주남 저수지

 

김 익 택

 

 

 

 

발 없이 달려오는

새벽 안개가

늪지대를 포옹하는 이른 아침

앙상한 버드나무는

모시 이불 밖으로 겨우 고개를 내밀고

수초 위 버드나무 가지에 앉은 해오라기는

마른 기침 삼키는 가

구부러진 목 줄대

구렁이같이 꾸물거리고 있다

 

멀리 산 등성이 태양은

막 머리를 치켜들고

마을 향해 아침 조반을 재촉하고 있고

하늘이 시끄러운 철새들은

안개 덥힌 호수 물결을 겹겹이 밀어내고 있다

 

마침내 산마루에 태양이 떠오르면

살 얼음 호수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무언가 후벼 파는 두루미와

잠수하고 있는 청둥오리 모가지가 더욱 바쁘다

 

이제 넓은 호수는

늦게 도착한 기러기 떼들의 전쟁터

밤새 저수지 지키던 갈대 숲에서

검은 딱새들이 조반을 찾기 위해

어디론가 훌훌 날아가고

언 몸 녹이려고 어깨와 어깨를 서걱대는

갈대는

서리꽃 진 자리마다

눈 부신 햇빛 비늘이 반짝이고 있다

 

 

 

 

 

 

잠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을 때

 

 

김 익 택

 

 

 

 

우울하고 괴로울 때

잠시 생각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니

정신병자 되어 하늘을 날고 싶다

배고픈 사람에게

백지수표 끊어주고

아픈 사람에게

주치의를 불러주고

평생 못한 꿈

생애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티 끝 하나 바라지 않는

마지막 속 내장 다 끄내어 주고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

 

 

 

 

 

 

 

 

혼자 하는 사랑

 

 

김 익 택

 

 

 

 

 

먼 길 돌아가는 나그네였습니다

내 마음이 그렇게 돌아가라 했습니다

곧장 가서 그대 얼굴 맞닥뜨리는 것이

왠지 부끄럽고 가슴이 콩닥거려서

그대가 보이지 않는 모퉁이를 돌아서

건널목을 건너고 고양이처럼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돌아갔습니다

혼자 몰래 사랑 한다는 것이

아픈 뒤 아름다움을 동반할지 몰라도

아름다운 만큼 외롭고 슬펐습니다

가파른 오르막 숨차는 길도,

후들후들 떨리는 내리막길도

오솔길보다 편한 이유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발길을 붙잡으면

무쇠 다리도 한갓 막대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징검다리 건너듯 돌다리 하나하나

사랑을 위해 그대를 위해

나 자신을 감추어야

배려임을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사랑은 눈 하나 더 있어

 

 

김 익 택

 

 

 

 

 

하나님이

시계를 거꾸로 돌려

나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나는 철모르던 사춘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얼굴에 여드름이 솟고

길가던 또래 가시네 그림자만 봐도

심장 박동을 울렁거렸던 그때로

좋아하는 것 조차 창피스럽고

해맑은 여자선생님은 평생 이슬만 먹고 사는 줄 알았던

그때로

 

그때는

눈 감아도 눈을 떠도

얼굴 하나 더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지

마음을 가까이 두면 둘수록

몸이 더 멀리 떨어져 그립던

뜨거운 군밤 같은 감성 하나 더 있었지

 

생각이 천국 같은 시간

이슬이 발목 적시는 밤

주체하지 못한 마음 풍선처럼 부풀 때

잔 별에게 물었지

네 마음 나도 모르겠다고

설령 좋아한다는 것이 죄를 짓게 된다 해도

마음 돌리고 싶지 않다고

 

이성은 순진했고

사랑은 무궁했던 그때처럼

설레던 맘 아렸던 맘 신비했던 그때처럼

먹을 것 없고 입을 것 없고 가질 것 없어도

그 가시네 생각하면 마냥 행복했지

 

그 시절 그 후론 그런 감정 다시 오지 않았지

하나님이

시계를 거꾸로 돌려

나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나는 미련 없이

철모르던 사춘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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