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왕릉 안개는
김 익 택
저 부드러운
온유한 빛은
썩은 마음
악한 마음
가리지 않고
허위
과대망상을
자식같이 보듬는다
평등은
너를 두고 한말
자연의 이치 따라
삶 따라 하기를
태초부터 했을 터
청춘 시절 다 지난 뒤
깨닫는 것이
삶의 태성
저 우유 빛은
모유같이 나누어주는 사랑밖에 없다
흥덕왕릉 안개 순식간 사라지다
김 익 택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풍경
눈앞에 펼쳐지자
무엇을 어떻게 너를
맞이해야 할지 몰라
마음만 바쁘다
그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듯
스며드는 안개
들어왔다 사라지는 것은 일순간
렌즈 갈아 끼워
조리게 열고 닫고
셔트 조절하는 동안
사라지는 그대
또 일년을 기다려야 하나
기회는 오는 걸까
마음에 지쳐
풀리는 다리
아이처럼 펑 퍼짐이 앉아 울고 싶다
저 소나무가 나에게
김 익 택
오늘은 안개가 필까
생각이 골을 파는 새벽
시간을 놓친 우울이
근심걱정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할일 많고 하지 못한 일 많은 너는
여태껏 팔팔 살면서
뭐하고 산다고 바빴느냐 다그친다
좀 더 빨리 오지 않고
꿈을 꿔
김 익 택
꿈을 꿔
네가 어디에 있든
공상과 상상의 나라에서 사는
꿈을 꿔
평생 그 자릴 떠나지 못해도
걸어 다니고 날아 다니는
꿈을 꿔
바람이 자유롭고 구름이 자유롭듯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 소나무
김 익 택
바람 부는 거리에 나섰네
꼭 가야 할 이유 없지만
생각이 방향을 제시하는 그곳
기다리지 않고 반겨주지 않는
그곳은
내 마음의 주파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
거기서 그의 처절한 육신을 보고 있으면
산다는 것이 아픔이고
아픔이 아름답다는 사실
책이 아니고 말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지
때로는 위로 하고
때로는 위로 받고
보이는 대로 느낌 그대로
받아 들여져 이유도 없이
그래 그래 괜찮아 괜찮아
사라지는 흥덕왕릉 소나무
김 익 택
가지 말라고
죽어도 함께 죽자고
서로 부둥켜 안고 울고 있는
저기 저 노송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 년은 옛말
솔잎혹파리
재선충이
저승사자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소리 소문 없이
빠지는
원형 탈모 같이
든 사람 몰라도
떠난 사람 빈자리같이
정수리가 훤하다
흥덕왕릉 소나무는 - 2
김 익 택
생이
아파서 아름답고
삶이
괴로워서 멋스러운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삶은
고통과 통증
고름을 짜낸 뒤 아무는 시간
인내가
아름답다는 말
말로 다 설명 할 수 없는
긴 한숨과 소실 점 잃은
눈빛의 침묵
삶
그에게는
인내
아름다움은
사랑 아니면
예전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을지도 모르는 말
돌에 꽃 피는 날
김 익 택
어디서 왔을까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서
저렇게 펄펄 휘날리며
달려오는 오는 것을 보면
그는 아마도 발 없고
눈 없는 천사인가 보다
아니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는
말없고 귀 없어도
제 할일 다하는
아파야 알고
더 아파야 깨닫는
가까이 있어 모르고
떨어지면 보이는 진리
뉘우치는 그날에 피는 꽃인가 보다
세월 앞에 언제나 나는
김 익 택
물 흐르듯 지나간 과거는
미래가 겁나지 않지
신발이 닿도록
달려온 사람 마음만 지쳤을 뿐
남은 것은
그게 그 자리
목적지는 저 만치 또 달려야 한다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치는 들 짐승같이
급하게 살아온 삶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려
갈피를 못 잡는 것이지
잊고 사는 동안
김 익 택
내가 그들을 잊고 있을 때
그들이 나를 기억하고
나를 생각하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설령
나를 아주 못 되게
기억하거나 생각하고 있다 해도
내가 모르는 잘못을
반성 할 기회를 주었으므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고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오늘 이 시간
바람으로 빚으로
텔레파시로 이심전심으로
신의 이름으로 또는
내가 모르는 그 어떤 교감으로
티끌 만큼이라도
내 맘 전할 수 있다면
신께 감사하고 싶다
소나무의 운명
김 익 택
벼락 맞아도 죽지 않던 소나무
나 죽어도
길이 살아야 할 유전자 가지 끝에 매달고서
열병에 말라 죽었다
봄의 향유가 활개 치던 날
송화가루 흩날리며 맺은 씨앗은
전세 살고 있던 까치에게 부탁하고
푸석하게 말라 죽었다
저승사자같은 환경미화원
전동 톱으로 몸통을
토막토막 낸 그 자리에 쌓아
영혼도 못 도망가게 푸른 비닐 천으로 덮고
밧줄로 꽁꽁 묶어 놓았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은
전설 아닌 전설
열대기후 온난화로
삶은 파리 목숨
늘 곁에 있어 몰랐던 높은 기상
정말 전설 이야기 될까 두렵다
흥덕왕릉 소나무는 -1
김 익 택
비굴하지 않아도
허리 휘고
고개 숙이는 의미
삶이 힘들어서 아니라
주인을 잃어버린
절의 아닐까
누가 묻지 않고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소리 없이 늙어버린
처연하고 의연한 모습
의롭고 거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