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양지 가을 편지
김 익 택
위양지 가을 편지는
태양이 쓰고 바람이 쓰고
곤충이 쓰고 비가 쓴다
잎 돋아 낙엽까지
살아남은
아프고 괴로웠던 시련은
빨강 단풍잎에 쓰고
즐겁고 아름다운 얘기는
노랑 단풍잎에 쓴다
그렇게 쓴
봄 가을 얘기는
미학 철학 문학
설명 해석 느낌 모두
독자의 몫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다
바람편으로 보낸 편지는
수신자가 없다
흙으로 돌아갈때까지
오늘 하루
김 익 택
거기 어디쯤 가고 있는
내가 잃어버린 이야기
저기 어디쯤 오고 있는
내가 찾고 있는 이야기
바람처럼 구름처럼 몰려 온들
내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면
내 것이어도 남의 이야기
나는 오늘
책을 읽으며
문득
저 만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나의 이야기와 소통할 줄 몰라
단절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멍하니
하늘을 쳐다본다
그림자 너는
김 익 택
물음이 없어도
믿음은 있었겠지
바람 없어도
희망은 있었겠지
네가 있어
내가 존재하지만
입이 있어
고마웠다는 말 할 수 없고
감정이 있어
감정을 표현 할 수 없어
너와 내가 아닌
눈을 가진 삶들에게
빛의 힘을 빌려
음과 양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삶의 희망과 미학을
전달 할 수 있는
그 의미만으로 도
충분 한 것이지
가을은 누군가 그리운 계절
김 익 택
유리창에 이슬이 눈물같이
흘러내리면
거리는 온통 낙엽엽서
한쪽 어깨가 시린 연인들은
이유도 없이 거리를 나와
노랗게 물든 가로수에게
여름을 묻는 가을은
빈손이 더 아름다운 계절이다
지난 여름 정염이 맺어 놓은 울음같이
발가벗은 차가운 바람에
시린 나머지
마지막 향기를 흩뿌리는 들국화처럼
죽음까지 다 주고 가는
쓸쓸해서 더 아름다운 계절
달빛 타고 날아 오는 기러기 떼
높고 푸른 그 너머 이야기같이
눈을 뜨고 눈을 감고 있어도
누구나 숨겨둔 그리운 사람같이
가을은 낡은 메모지에
유언 같은 시를 쓰는 싶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