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판지 얼음 꽃
김 익 택
새 아씨 적
울 엄마
고운 손끝에 피어났던
모란꽃 한 폭을 수놓은 듯
갈 수 없는 이상의 세계
몽유도원도를 그려 놓은 듯
간밤에 바람은 물을 빌고
물은 바람을 빌어
눈 밝아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냉기류를 붓을 삼고
차가운 물을 화폭 삼아
이상의 세계를 그려 놓았구려
얼음이 그린 그림
김 익 택
영하의 날씨에
꽁꽁 언 얼음이
스스로 하얀 도화지가 되고
물감이 되어 그림을 그려 놓았다
손도 없고 붓도 없이
차디찬 가슴으로 그린
그 그림은
점 선으로
공백을 절묘하게 구성하여
동양화 서양화
추상화 구상화
보는 사람 마음
느낌 가는 대로 옮겨 놓았다
어디 한 곳
머물지 않는
구름같이 바람같이
환경 기후
흐름에 내가 아닌 네가 되어
액체 고체 기체가 되는
그의 임기응변은
아울러 하나가 된다는 사실
결속을 해야 단단하다는 사실
더불어 살아야 아름답다는 사실
하나가 되어야
또 다른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온 몸 똘똘 뭉쳐
손수 보여주고 있다
얼음이 우는 소리
김 익 택
하늘의 눈물로
바람의 울음으로
한데 엉겨 붙어
쩡쩡 앓는 소리로
가슴을 진동케 하는
그 소리는
살 갓을 도려내는 듯 아픈
삶을 일깨우는
자성의 시간
희망이 깨어져도
아프지 않고 깨우치는
진리는 없다는 사실을
참아야 마침내 깨닫는
생물의 자명종 소리라는 걸
겨울 강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버리지 못한 욕심
김 익 택
삶의 마당에서 태어나
웃고 울고
얼마나 열심히
살았던가
놀았던가
바람의 무게의 의미를 모르는 시간
찰나처럼 지나가고
바람이 무거워 관절이 시리는 시간
달팽이처럼 느리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삶 어느 것 하나 녹녹치 않다는 사실
눈 앞에 아롱거리는
하고 싶은 많은 그 모든 것들
빈손에 말아 쥐고
욕심과 허영심 추스르지 못한
나를 발견 했을 때
과거는 빨랐지만 희망은 늘 휘청거렸고
미래는 보여도 내 것이 될 수 없는
밤 하늘의 별
항상 저 만큼에서 반짝거리고 있었지
주남지의 겨울 연
김 익 택
옹기종기 모여
꽁꽁 얼어 있는
주남지의 연밥은
멀리 시베리아에서 날아 온
철새들의 먹이
차갑게 얼어 붙은 얼음장에
마른 줄기를 겨우 지탱한 채
물 속엔 뿌리
수면 위엔 연 밥
배고픈 철새 먹으라고
스스로 표적 깃대가 되어
찬바람을 맞고 있다
얼음 꽃
김 익 택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해
온 몸이 굳어버려
신이 입술로 그린 그림
흐름이 멈추는 순간
내 의지로 돌아갈 수 없는
눈물이 그린 그림
가난해서 순수하고
순수해서 맑은
물의 혼이 그린 그림
얼음 울음 소리는
김 익 택
갈대가 추위에 지쳐 쓰러지면
언 강물 우는 소리 밤바람을 가른다
얼마나 아팠으면
울음소리마저 가슴을 갈라지게 하는지
추워서 바람까지 우는 날이면
숨 구멍까지 얼었으니
이제는 더 얼 것이 없다고
얼음이 우는 소리
십 리 밖 과부 집 문 고리를 잡고 운다
짧은 하루 햇빛으로 녹일 수
없는
바닥 쓸고 가는 바람 야속하다고
얼음이 우는 소리
어쩌면
수면 깊은 곳 물고기 우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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