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 밭 아침
김 익 택
이슬 맺힌 메밀꽃 인사가
싱그러운 아침
새 아침에도 지지 않는
상현달은
작별이 아쉬운가
웃어도 보이지 않는 얼굴을
구름 뒤에 숨는다
이를 모를리 없는 태양이
상현달을 들춰내어
재갈길을 재촉하자
상현달은 살그머니
자취를 감추었고
태양의 광채에 지레 겁먹은
이슬이 스스로 자취를 감추었다
지난 밤 풀벌레소리
날이 밝자 흔적 없듯
메밀꽃 심성
김 익 택
넓은 밭을 가득 채워야 그나마
하얀 본색을 드러내는 메밀꽃은
화려하지 않아도 정감이 깃들고
아름답지 않아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네 아버지
성실한 농부(農夫) 심성을 닮았다
조금 아파도 참으며 일을 하고
조금 어려워도
단한번도 내색하지 않는
우리네 어머니
부지런한 농부(農婦) 닮았다
끼니 때마다 올라오는
우리네 밥상위에 된장국을 닮았다
봄날 창가에서 사색
김 익 택
봄 날 창가에 앉아 꽃 바람을 맞고 있으면
고마운 생각에 문득 궁금한 점 몇 가지
이 상쾌한 바람은 어디서 왔을까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미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여기까지
아니면
유럽을 거처 아시아 산맥과 산맥을 건너
한국땅 여기 오기까지 먼 길 오느라 참으로 고생했겠다
그런데도 피곤한 기색이 없이 나를 상쾌하게 맞아주니 고맙구나
어제 하루 잠 못 자도 눈뜨기 어려운 나
이렇게 피곤한데
변해도 변하지 않는 너는
피곤한 기색도 없이 늘 새롭다
또 다시 동남아로 더위 습도 비를 벗삼아
인도로 거처 아프리카로
길고도 먼 여정을 떠나는 너를 보면
마음이 가볍지 않는데
너는 걱정도 없이 미련도 없이
단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는 구나
시간
김 익 택
오늘도 나그네는
바람을 거느리고
도시 뒷골목을
무자비하게 달리고 있다
끼니를 거르고
밤낮을 가로질러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고 있다
하늘을 가르듯
번개 치고 천둥 쳐도
꿈적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