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역 능소화
김 익 택
오래전 집주인은 떠난 마당엔 웃자란
개망초와 쑥대가 서로 키 재기를 하고 있다
그래도 빈집을 지키고 있는 것은
판자 울타리와 만발한 능소화
언제 올까
꼭 올 꺼야
그때까지 울지 말고
서로서로 의지하듯 부둥켜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 그 옛날 전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님 소화 같아 애잔한데
나그네 울적한 맘
슬픔이 터지고 말았을까
꽃송이 맺혀 있던 빗방울이 눈물같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능소화 배롱꽃의 의미부여
김 익 택
생명을 가진 생물이라면
편안하고 편리한 삶을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
배롱꽃과 능소화는
칠월은 뙤약볕 아니면 장마가 전부인
석달열흘을 피고 진다
하여 측은지심 그보다
고맙다는 말을 할 수밖에
전설이지만 한으로 피어
후세에 삶들에게 사랑의 환생
의미부여 아니면
불변의 사랑의 메신져로 기억될까
능소화 사랑 약속
김 익 택
이열치열도
맛있는 음식에만 가능한 말
전쟁 중 폭탄세레에
탈출 아니면 외출은 피해야 하는
칠월 오후
능소화는
한여름의 서리로 피어서 일까
칠월 폭서에
능소화만 뜨거운 담장을 꼭 붙잡고
기어오르고 있다
그 꽃 앞에서
사랑하면서도 더 단단히 믿음을 다지고 싶은
젊은 연인은
영원히 변치 않을 박제 사진을 찍고 있다
능소화의 아름다운 우울
김 익 택
나만의 고정관념일까
돌담장과 능소화 하모니가
판화같이 선명하다
오지 않는 기다림과
사랑 외면
그리고 죽음까지
검은 골기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에
힘없이 떨어지는 꽃잎
그릴 수밖에 없었던
깊은 사연 있어도
벗어나지 못함은
진정한 사랑 아니라
고지식한 일념 같아
죄 없는 네가 나를
우울을 아름다움으로
이율배반을 하게 한다
희망고문 글 쓰기
김 익 택
대단하다 그 말
경이롭다 그 말
나는 언제 한번
들을 수 있을까
내 안의 고통과 내 안의 슬픔
쥐어짜서 갈고 닦은 삶의 한줌
내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작은 빛이 되고 소금이 되기를
매일매일 쓰고 담는 일
내가 나에게 묻는데
그 대답
단 한번도 듣지 못해도
어느 누가 책임 의무 묻지 않는데
주위 핀잔은 허공에 걸어 두고
희망고문을
사색하고 고민하고 있다
믿음도 의심도 없이
한때 그대 생각에
김 익 택
잘 알지 못하는 그대
나 그대와
하나이고 싶었던 간절한 생각
날밤을 세워도
밑 빠진 장독 같은
세월은 무거웠지요
그래도
끊을 수 없는 그리움은
대궐 집을 짓고 뭉개기를
수 년
미안해요
납치할까 협박할까
엉뚱한 생각들을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고마워요
사랑했기에 참을 수 있었고
사랑했기에 꿈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부질없는 것이 아니라
아픔보다 진한
그리움으로 오래도록 남아
포도주같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걸어가는 길
김 익 택
지금 가는 길
생각 없이 걸으면
현재 밖에 없지만
지금 가는 길
목적을 알고 걸으면
발걸음에 힘이 붙고
휘 젖는 팔에 바람이 가볍습니다
지금 가는 길
지겹게 걸으면
눈에 보이는 것 모두 하찮지만
지금 가는 길
사연을 알고 걸으면
눈에는 영상이 흐르고
귀에는 음악이 들립니다
일년 내내 피는 꽃
김 익 택
벌
나비
없지만
앞산 뒷산
저 산봉우리는
일년 내 꽃을 피우네
봄에는 조잘대는 병아리같이
여름에는 촉촉하게 젖은 안개꽃을
가을에 노랑빨강파랑 색동저고리같이
겨울은 사랑하는 사람 입김도 아까운 백설기 꽃을
누가 보던 말던 밤에도 낮에도 바람같이 구름같이 꽃을 피우네
햇살이 여문 아침 산책 풍경
김 익 택
장독 달이는 아침 햇살을 뒤로 하고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풀들은 이슬을 떨구었고 새들이 풀숲을 뚫고 날아갔다
푸른 소나무 바늘 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숲속을 해집었다
키 작은 풀과 나무들은 하느님을 맞이하는 듯 한결같이 웃고 있었다
계곡의 물은 바람에 얼굴을 씻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가 어쭙잖은 사람들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다람쥐는 눈치를 살피며 참나무 가지 위로 뜀틀을 타고 있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안개가 부끄러운 듯 나무 숲 사이로 숨어들고 있었다
풀잎에 잠자든 잠자리와 나비가 어깨에 이슬을 털고 있었다
꽃이 기지개를 펴려고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허기진 입맛을 돋게 하고 있었다
그 길가에 핀 꽃
김 익 택
그 꽃은 무성한 수풀에 지쳐
줄기는 가늘고 꽃송이는 여려
실바람에도 허리가 휘 청
나비가 앉아도 목이 꺾여
보기가 여간 언짢지 않다
하지만 기어코 피고 마는
그 인내가 가여워서 아름답고
가냘퍼서 향기롭다
그 꽃을 보고 있으면
세상사 힘겨운 일
남의 일 같지 않아
쉬이 눈길 거두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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