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판지 물 안개



김 익 택



 

 

 

 

동판지 기슭

소리 없이 피어 오르는

하얀 물안개가

붉은 빛에 스며들어

하늘 향해 머리 풀고 있다

 

하얀 백로는

누가 숨어 보는 이 없는데도

산 그늘 어두운 곳으로

날아가고 있다

 

먼 마을 피어 오르는

뽀얀 연기는

바짝 엎드린 채

계곡을 거슬러 올라

산속 동향을 지켜 보듯

머뭇거리고 있다










물의 속내

 


김 익 택



 

 

 

내면의 힘이 외면을 다스리고

외면이 힘이 내면을 다스리는

물의 속내를 

가만히 파고 들어가 살펴보자

 

뼈도 없고 살도 없는 것이

뭉치면 

칼이 되고 송곳이 된다

 

욕심 없고 근심도 없는

물의 속내를 파고 들어가

가만히 살펴보자

 

보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때와 장소 관계없이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고

잘 먹으면 피가 되고

못 먹으면 독이 된다

 

 



 





동판지 아침



 

김 익 택




 

 

 

고귀한 손님 맞이하듯

동쪽 산머리에 먼동이 트면

숲 속 새들은

이슬을 털고 일어나고

호수 물안개 신령처럼 일어난다

 

수초는 바람 불지 않아도

물고기 간지럼에 미소를 짓고

머리 풀고 돌아앉은

수양버드나무는

풋풋한 처녀 생머리처럼

빗지 않아도 가지런하다

 

새소리 아니면

적막 밖에 없고

빛 아니면

이슬도 일어나지 않는

동판지는

고요해서 평화롭고

조용해도 찬란하다










겨울 나무 겨울 나기



김 익 택 

 

 





눈 바람 굴러가는 소리뿐인 겨울

얼음에 발 담고

꼿꼿히 서 잇는 저 나무는

숨길 것 하나 없는 알몸이다

 

풍성해서 아름다운 지난 여름은

현실이어도 꿈

얼음 속에 박제된 낙엽들

제 몸 썩거나 찢어져

땅속으로 돌아가 넋이 되고 흙이 되기까지

아픔도 즐거움도 바람을 빌려 운다

 

어둠도 시끄럽던

가을 가고

제 한 몸조차 버거워 헐 벗는 겨울은

편히 쉬는 동면의 시간 아니다

 

추위에 마음 절이고

긴장의 시간에 졸이는

맘 다져서

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갈대의 항변



김 익 택

 

 

 



무엇을 어떡하랴

제힘으로 표현 할 있는 의지가 아무것도 없거늘

사람들은 지조가 없다 하고 의지가 없다 하지만

알고 보면 사람들이 갈대를 본심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가만히 놔두라

가는 허리 부러지지 않기 위해

바람에게 허리를 숙였을 뿐이고

제 새끼 먼 곳으로 시집 보내기 위해

바람의 힘을 빌렸을 뿐이다

 

탓하지 마라

소리 없어도 산다는 것은 싸움이다

죽기 위해 억지로 몸을 곧 세울 수는 없는 일

살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 몸을 흔드는 것이다

 

꼼꼼히 잘 살펴 보거라

내 다리를 붙잡고 기어 오르는

잠자리 유충은 우화해서 하늘을 날고

고동은 제 집 지고 올라와 알을 까고 

 

숲처럼 우거진 내 품속에서

새는 알을 낳고 쥐는 새끼 낳는다

알고 보면 그 어느 곳 보다 소중한

생명 안식처가 내 가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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