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동백꽃
김 익 택
얼마나 간절했으면
귀끝 코끝 도려내는
엄동설한에
피 빛으로 피었을까
송곳 같은 부리로 꼭꼭 쪼아
꿀만 빨아먹고 가는 동박새
떠나고 나면
옷고름 뜯기고 속곳 해쳐진 채
순결 빼앗긴 처녀
넋 잃고 앉아 있는 모습같이
필 때는 뜨거운 가슴이었을지언정
질 때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해도
속절없이 떨어지는 지는 것을 보면
동백꽃의 비애
김 익 택
모진 추위에도
그토록 싱싱했거늘
하양 빨강 노랑
저마다 멋들어지게
자태부리는 봄
억울한 누명 쓰고
작두에 목 잘린
사형수같이
여기 저기
전쟁통에 죽은
시체무덤같이
쌓여있는 모습
가엾다 못해 서럽고
서럽다 못해 아프다
꽃들의 속셈
김 익 택
터뜨리는 꽃망울들이
관중매진 경기장같이
벌들의 날개 짓 소리로
머리가 어지럽다
꽃샘의 꿀은
누구를 위한 만찬일까
벌은 매번
허탕과 허탕
날개 짓이 힘겨운데
꽃은 바른 대접 한번 못하면서
오는 손님마다 않고
반기는 미소가
한결같이
싱그럽다 못해 화사하다
누가 꽃잎 지는 소리를 들어 보았는가
김 익 택
누가
꽃잎 지는 소리
들어 보았던가
제 앞가림 다하면
바람 불지 않아도
소리 소문 없이
떨어지는 꽃잎을
사람들이 저마다 감정을
표출했을 뿐
정작 떨어지는 꽃송이는
단 한번도 스스로 자랑하지 않았다
누구나 있었던 청춘
한때 풍미는
지나고 나면
화려한 그리움만 남을뿐
떨어져 농하고
흩어져 제 모습 잃으면
원래 제 모습으로 돌아가는
기약 없는 억겁 년
인고의 세월은
이름도 남지 않고
생명도 흔적 없는
그림자 자취를
땅만 기억 기억할 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