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극락암

 

김 익 택

 

 

 

 

 

구름도 잠시 머루다 가는

영취산 산마루

그 아래

 

폭의 병풍 같은

극락암

아름드리 푸른

천군만마 못지않게 믿음직스럽다

 

아래

좋아도 입다물고

싫어도 입 다물고

염불만 외는 스님같이

늘 푸른 대나무

언제 봐도 변함없이 시원스럽다

 

아프고 가난한 삶들

희망 주고 사랑 주고

보듬듯

소복이 쌓인 하얀 눈

 

년을 닦아도

극락의 세계인가

산도 꽃

절도 꽃

사람도

사랑밖에 표현 할

다른 도리가 없다

눈 내리는 날 극락암에서

김 익 택

 

 

 

 

당신 평생

못 볼 것 본적 몇 번 있었으며

당신 평생

죽어도 여한 없는

아름다운 감격 몇 번 있었던가요

 

매화피고 동백피고 산수유 필적

눈 오는 날

극락암에 가면

 

당신 평생

외롭고 괴롭고

아프고 그리웠던 일

한 순간

잊을 수 있는

사랑의 환희 만날 수 있고

잃었던 감격 만날 수 있습니다

 

내 어릴 적 저녁 어느 겨울

김 익 택

 

 

 

 

 

짓 눈 개비 흩날리는 저녁

언 손 호호 불며

종종 걸음으로

집으로 가는 길은

따뜻한 안방이 제일 그리웠죠

 

마을 초입 들어서면

개만 짖어댈 뿐

집집마다 대문은 닫혀있고

사람그림자는 찾아 볼 수 없었지요

 

굴뚝의 매캐한 검은 연기

미친개처럼 날뛰듯 골목길을 휘 젖고

막다른 골목에 몰아치는 칼 바람이

볼을 때리면

골목 끝 너머 외딴 우리 집이

왜 그리 먼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요

 

마음이 바빠 빨라 걷다

앞창 뚫린 검정 고무신

파고드는 돌부리에 야무지게 채이면

아파도 너무 아파서

펑펑 울고 싶었지요

삶이란 모름지기

김 익 택

 

 

 

 

 

세상에 좋은 일만 있다면

어찌 아픔의 진리를 알까

 

몸이 병들만큼 그립다는 것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보다 아름다운 것

 

내 곁에 쉽게 찾을 수 있는

식 재료

섞어서 또 다른 별미 탄생하듯

실험 모험은

실패해야 꽃을 피울 수 있는 자양분

 

귀한

산삼 꿀만 먹는다면

그것

아픔으로 가는 지름길이지

 

세상에 알다가 모르는 일이 태반

 

삶이란 모름지기

주워서 잃은 것도 있고

잃어서 터득하는 것도 있지

 

모우기도 하고

비우기도 하는 것이 삶이지

그 사람

김 익 택

 

 

 

 

눈길 따라 마음 가고

생각이 얼굴 붉게 하고

가슴 콩닥거리게 하는

어제 같은 오늘

돌아오기 전

그 사람 나는 못 잊습니다

 

상황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흘러도

그제 같은 오늘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그 사람

그리움은

현재 진행 중

나에게 그 사람은

과거의 한때 일 아닙니다

살면서

김 익 택

 

 

 

 

내가 얼마나

올바른 양심을 위해

싫은 일 마다하고 직언한 일

얼마나 있었던가

안면에 받히고

의리에 받히고

불이익

불화살

좋은 것이 좋다고

돌출행위

그것 싫어서

두리뭉실 덮어두고

듣고도 못 듣고

알고도 모르고

보고도 못보고

나를 꾹꾹 누르는 일

일상의 습관화 오래되지는 않았는가

 

동백꽃 지혜

김 익 택

 

 

 

앓아 누워야 아는

건강같이

물이라는 물 모두

꽁꽁 어는

영하에 날씨에 기어코 피고 마는

너는 아픔을 아는 꽃이다

 

태양의 지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바람의 훈수를 알고

완벽한 업무수행을

할 수밖에 없는

물의 결정을 안다

 

그래서 너는 사랑

그 참된 의미를

아름다운 저항으로 핀다

 

붉은 꽃술은

인내 한계를 뛰어 너머

지독하게 아파야

터득할 수 있는

물음의 화두를 얻은 것이며

가슴 아리도록 붉은 빛은

인내를 견뎌낸 울음의 빛이다

 

얼지 않는 꿀은

살갗이 얼어 터져야

비로소 맺히는 피 멍같이

맑은 물이 소금 덩어리가 되도록

내속에 염원이 굳어진 것이리라

 

그와 같이 모은

꿀 한 방울 아낌없이

동박새에게 주는 것은

사랑의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며

내 어린 씨앗의

새 삶을 부탁함이리라

벌써 1월 중순 넘어 가는데

김 익 택

 

 

 

 

서리꽃이 피면

김장하기 바빴고

눈꽃이 피며

팥죽 끓여 언 동치미 먹으며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 나누던 12월은 가고

눈보라치고 꽁꽁 언 얼음으로 속으로남은 것은 아쉬움의 온상지

 

2015년 새해

온갖 다짐 계획 앞세우고

출발한지4주째

대한이 소한 집에 놀려와 얼어 죽었다는

1월 중반 넘어가고 있다

 

멀리 남쪽 어느 마을은

동백꽃이 피고 매화꽃이 피고

북에서 날아온 고니 기러기 오리 두루미

얼음물에 잠수하기 바쁜 1월은

2월을 향해

 

추워도 가고

얼음이 얼어도 가고

눈보라가 쳐도 가는

하루가

 

느릿느릿 지겨워도

가고 나니 재빠르다

시어는

김 익 택

 

 

 

 

정리 되지 않고

무질서하게 떠돌아 다니는

수많은 생각들

날 잡아봐라

날 잡아봐라

눈 가리고 술래잡기하듯이

머리 속을 휘 젖고 다니는

단어 한 두 자

원인도 출처도 모르고

출신성분 모르는

그것 붙잡고서

아는 지식 긁어 모아

지혜와 슬기 상상 생각

이념 관념 탈피 해탈 계발하여

연상하고 나열하고 배열하고

도치 정치 행 바꾸어

꿰 맞추어서

몸통 팔 다리 손발 만들고

눈 코 잎 귀 얼굴 만들어

숨쉬게 하고

가슴에 정신과 혼을 불어 넣어

생각이 행동으로

걸어가게 하고

나 아닌 불청객

그 분들

읽으면 읽을수록 우러나는 맛

곱씹어 읽어도 눈길 머무는

가슴에 작은 전율일어

다시 읽는

한편의 시

일평생의 원

그런 한편 시 쓰기 위해

오늘도 나는

정처 없이 떠도는

단어 하나를 붙잡고 시름하고 있다

 

 

 

 

내가 나와 한 약속은

김 익 택

 

 

 

 

 

 

내가 나와 한 약속은

나 혼자만 아는 것이며

나 혼자만 지키며 되는 것이지만

내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다

그 이유

비록 나 밖에 모르는 일일지라도

지키지 않아 물질적 손해 없고

타인이 몰라 묻거나 지적하지 않아도

내 양심 내 인격 내 정신을

스스로 모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이해하고 용서할지라도

내가 나에게 미안하다라는 사과는

최소한의 예의

내가 나를 존중하는 행위이다

극락암의 설중동백

 

김 익 택

 

 

 

하늘 길 가는 홍교 지나

극락전 옆

돌아 가는 골목길에

붉게 핀 동백꽃

 

매몰찬 산바람에

종종 걸음치며

오는 사람

행여 다칠까

 

바쁘다 서두르며

가는 사람

행여 넘어질까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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