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지만 1
김 익 택
존경했지만 어러웠지요
사랑했지만 부러웠지요
용기가 없었습니다
하고싶은 말도
듣고싶은 말도
마음에 묻어두었지요
변명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그대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짢고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지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사실은 그게 아닌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정과 달리
정작 마음은
행동을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했지만 2
김 익 택
아름다운 길이 있었지만
돌아 갈 수밖에 없었지요
일부러
모험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돌함이 때로는 신선한 것인데
내마음이 억지를 받아드렸습니다
보이는 것이 아무리
감정을 부추겨도
유리 벽을 깨뜨릴 수 없었어요
그것도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올가미에
해반천 가을
김 익 택
흰 구름이 얼굴 내밀었다
사라진 그곳에
황금 잉어가 일광욕을 하고
물 오리가 노니는
물결 따라
노랑 빨강 단풍이 어깨춤을 춘다
지나가는 바람 질투하는 양
강물이 휩쓸고 지나가고
고개를 가로젖는
하얀 갈대꽃에 앉은
한무리 참새때 수다를 떨었다
단풍잎이 던지는 질문
김 익 택
붉은 빛으로 물던 강물에
떠다니는 낙엽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의 진리일까
자니치는 바람이
의미 없는 삶을 묻는다
나그네 옮기는 발걸음에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양심을 묻는다
등 떠미는 시간
김 익 택
순간순간 지나가는
하루 24시간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아도
게으른 주인공을 만든다
말하지 않고
일기를 쓰지 않아도
시간가면 먹는 나이처럼
얼굴에는 주름이 늘고
가슴에는 아픔이 쌓이지만
펼쳐 볼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는
죽음의 살생부 같이
누구는 지나온 삶을
거울을 삼아 개척하고
누구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노루처럼
과거 없는 미래를 살고
누구는
가만 있어도 쌓이는 나이처럼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데
시간은 나를 자꾸
등을 떠밀어
허무한 주인공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