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
김 익 택
허물어진 집은 대문도 담도 따로 없다
한삼 넝쿨과 쑥대가 어수선한 앞마당에는
일일이 열거 할 수 없는 삶의 기구들이
잡초 속에 이리저리 늘려있다
죽은 사람 배속 모습이 저럴까
폐가는 제안의 내장을 모두 쏟아 놓고
주저 앉아있는 모습이다
저 속에서 먹고 자고 노래하고 춤추고
가끔은 싸우고 화해하고
꿈을 키우며 살았을 가족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털끝 하나까지 다 품어주었을 집은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주인을 기다리는 집 짐승처럼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폐가는
귀신보다 잡초가 먼저 아는 것일까
뒷간 우물 장독대 담장 마당
눈 돌아가는 곳곳마다 잡초들의 세상이다
마루에 나뒹구는 쩍쩍 금이 간 家和萬事成 유리액자
무너진 흰 벽 기둥에 홀로 바래가는 가는 立春大吉 祝文
누런 불알 깨진 유리 밖으로 내밀고 있는 흙 먼지 뒤집어쓴 掛鐘時計
죄인 이마의 낙인처럼 대들보에 붙어 숨을 펄떡거리는 붉은 符籍
그래도 폐가는 주인의 숨결을 보듬듯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뻐꾸기가 제 새끼를 부르느라 목 터지듯
죽은 시계 불알 붙잡고 늘어지듯
겨울 강추위에 빛을 머금은 태양은
서쪽 산마루에 붉은 노을만 남겨 놓고 흔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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