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사 억새집
김익택
아담한 저 억새집에
아침 저녁
굴뚝에 피어오르던 연기 언제였을까
힘없이 처마에 기댄 굴뚝엔
검은 연기 거스름이 탈색되어 희미하다
찢어진 창호지 방문 살 사이로
햇살이 비추고 있듯
바람 아니면 찾아오지 않는
저 억새집에도
한때는 분명히 많은 삶들이
숨을 쉬고 사랑도 품었으리라
언젠부턴가 사람 손길 닿지 않아
헝클어져가는 지붕은
어미 닭이
마지막 새끼를 품은 모습
정겹고 포근해 아쉽기만 하다
삶이라는 것이
김익택
독립을 한다는 청소년 그 시절엔 새로운 희망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설명해도 설명이 모자라는 만남 또한 설레어
설명의 범위를 뛰어 넘었다는 것
살다 혼자가가 된다는 것은 자연적인 일지라도
후회가 양심을 두려움은 자책을
끝없이 따져 묻는 다는 것
그 다음 외로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
삶이 홀로 된다는 것 홀로 산다는 것은
거절할 수 없는 삶의 회귀가
타인에 비쳐진 내 겉 모습의 초라함을 생각하면
말처럼 쉽지 않는 새로운 삶이라는 것
봄 바람이 불어도 찬 바람이 불어도
빠르게 흘러간 청춘은 웃고 빠르게 다가온 늙음은
웃음을 잃게 해도 반려할 수 없는 내 것이라는 것
불행해도 행복한 것인지 내적인 삶의 의문과
추해도 아름다운 것인지 외적인 삶의 모습도
사랑보다는 외면이 먼저인 현실까지도
삶이 홀로 된다는 것 홀로 산다는 것은
거절할 수 없는 삶의 회귀가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임을 알아야 하다는 것
재 개발 마을 전봇대 가로등
김익택
저기 골목이 그리운 것은
버리고 떠나도 지키고 있는
전봇대 가로등
의리 때문만이 아니다
사랑이 떠나고 추억을 남겨둔
그 자리 또 누군가
사랑의 얘기를 만들기까지
세월은 기약 없는 바람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골목길은
검은 자동차에서 내려 안녕 잘 가
가로등이 비추기 전에 사라지고
다시 텅 빈 골목
홍도야 울지마라
노동의 카타르시스를 풀던
술 취한 어느 아버지의 노래는
아직도 추억이 생생하다
발전은 바람보다 빨라
늙지도 썩지도 않고 장성 같은
전봇대 가로등은
빈 골목길을 지킬 명분이 읽고 난 뒤
지나가는 똥개 영역표시 구역
빛을 잃은
전봇대 가로등은
십자가를 짊어진 사향수같이 서 있다
이성 마비
김익택
내가 할 수 없는 내 가슴에 청소는
누가 해주나요
보이지 않아 붙잡을 수 없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뇌가 좁다고 아우성을 치네요
생각과 생각이
행복을 붙잡지 못해
거들 수 없는 한이 가슴을 마구 찢어
불을 붙이고 있네요
한잔의 술로 부족해요
욕설로도 만족을 못해요
발악이 부채질하네요
행복추구와 현실의 충돌을
겉잡을 수가 없네요
사랑도 버리고 꿈도 버려도
저돌은 줄지가 않네요
밤낮없는 이 무지막지한 횡포를
누가 막아주나요
내가 나에게 묻기를
김익택
내가 나에게 관대하다는 것은
대변 아니라 나태의 문을 활짝 열어 놓는 것이다
잠시도 멈출 수 없는 부지런함을
게으름 하나에 무너지는
내가 할 수 있는 내 능력을 내가
잃어버리는 것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
살면서 말과 글과 행동을 하나로
얼마나 실행했을까
양심에 비추어 한점 부끄럽지 않는
이 시대의 스승 탄허 성철 법정 스님같이
바라기를 내가 되기를
내가 나를 알면서 사는 법 마음에 새겨본다
화포천 영광사 겨울아침
김익택
아침을 일깨우는 범종 소리에
살아도 죽음 같은
하얗게 말라버린 억새군락을
뽀얀 안개가 포근하게 덮고 있다
지난밤 안녕했는지
서로 안부 묻는 아침 인사인지
물 안개속의 화포천은
물오리소리로 가득한데
화포천을 지나가는 KTX 소리에
새소리들은 숨을 멎고
날아가는 기러기는
가는 길을 바꾸어 휘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