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연화사
김 익 택
가야시대에는 허황후 궁이었다가
조선시대에는 김해부 객사였다가
일제시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지금은 도심속의 사찰로 다시 태어나
아침 예불소리 도심을 깨우고
저녁 예불소리로 도심을 잠재운다
가야시대부터 지금까지 1600여년
나라가 바뀌고 나라를 빼앗기는 동안
성도 이름도 잃어버린 세월
짧은 영광과 긴 시련을 뒤로한 채
이제는 불변의 진리 도량으로
사람들 정신을 일깨우고 살찌우고 있다
연화사 수련
김 익 택
대지를 태우는
폭염과 가뭄 밖에 없는 삼복 더위에도
고개 들어 삶을 위로하고
가지를 분질러 놓을 듯한
비바람 몰이치는 태풍에도
꼿꼿이 사랑을 전하는 것을 보면
부처님 진심을 닮았다 아니할 수 있을까
물은 고요하지만 뿌리박은 진흙은 썩었고
바깥 세상은 환하지만 무더위에 활짝 피어
무언의 법문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보면
연화사 잉어
김 익 택
도시 속의 섬
연화사의 잉어는
어느때는
대웅전 앞에서
스님 염불 소리에 맞추어 돌 돌고
어느때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면벽같이
조용히 대웅전을 돈다
김해 연화사 역사
연화사는 범어사 포교당이자 김해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동상시장과 맞붙어 있는 도심 속에 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볼 때 가락국을 창건한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가 살았던 곳(중궁터)으로 전해지며, 한때 호계사(虎溪寺)란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지방관아 부속건물인 객사 후원지가 되었다고 한다.
180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해부내지도를 보면, 이 자리에 객사 별장인 함허정이라는 정자를 중심으로 연자루라는 누각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함허정과 연자루는 사라지고 이 함허정 터에 포교당이 들어서면서 연화사가 되었다.
지금의 연화사는 1970년 11월 15일 화재로 소실된 것을 김해출신 김택수 IOC 이원이면 대한체육회장 김택수 화장과 그의 아우 김한수 한일합섬회장이 1975년에 중창하여 기증했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