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은 피는데
아름답다 귀하다
맞이해주는 것은
한낮에 잠시 지나가는
햇빛뿐이다
온 종일 귀사대기 때리고
아랫도리 후려치는
찬바람은 매몰찬데
원망은 모른다
오직 내가 살아야 하고
내가 꼭 피워 야는 목적 밖에
생살 얼어 터져
속살이 드러나고
피 멍이 굳은살이 될 때까지
오직 참으며
기어코 피어야 하는
그에게 약속은 희망의 환희
지독한 생명 사랑뿐이다
동백꽃의 속내
김 익 택
저 짙은 초록 잎사귀에 숨어 피는
붉은 동백꽃은
자식의 애태움을 포용하고 수용하느라
속이 삭는 어머니를 닮았다
찬비에 동백꽃이 떨어지고
김 익 택
먼 산에 무지개
하늘에 다리 놓고
동백꽃이 떨어지는 날
바람이 묻지 않아도
비가 아는 삶들은
땅속에서
새로운 삶 준비를 하고 있다
동백꽃이 지면 봄은
만남 없는 떠남
꽃과 열매는
평생 만남 없는 이별
천연이 사연을 낳고
전설을 낳는다
아버지와 동백꽃
김 익 택
동지섣달 엄동설한
알몸으로 견뎌내어
눈 녹고 얼음 녹는
춘삼월
어머니같이 피어서
아버지같이 소리 없이 지는 꽃이여
저리도 붉은 것은
나보다 너를 위해
인고 세월 참아낸
응고된 슬픔이
저절로 얼어 터진 입술인가
시기하는 봄바람이
속치마를 훔쳐보듯
찬바람이 들추고 지나가면
떨어지는 꽃 몽우리
속절없이 생각나는
추억은 있어도 후회는 없다
우리아버지 일제 때
풀 뿌리로 연명한 삶
스물살에 참전했던 62.5
죽을 고비마다
어린 자식 위해 발버둥친 삶이다
다 성장한 자식들
제 갈길 떠나가고
병든 몸 홀로
끙끙 앓는 소리
문풍지 소리에 감추어도
회 치는 밤 바람이
뼈 속을 훑으면
울다 지쳐 잠든 아이처럼
모로 누워 잠이 들면
야윈 몸을 쑤시는 관절염
속절없이 지난 세월
아픔은 많아도 후회는 없다
동백과 장미
김 익 택
동백과 정미는
동서양의 미학이다
내 안의 아픔
승화시켜 피는 동백은
눈보라에 피어서
봄날에 떨어지고
내 안의 정열
승화시켜 피는 장미는
오뉴월 뙤약볕에 피어서
비바람에 떨어진다
붉은 색 꽃 모양
동 서양 미와 의미
사랑 아니면
설명이 가당치 않는 상징성
극적으로 닮았다
동백은 향기 그 보다
깊은 곳에 간직한
꿀이 있는 반면
장미는 숨길 것 하나 없이
모두 드러내는
깊은 향기와 화려한
아름다움이 있다
동백꽃의 애환 1
김 익 택
단 한번도 편안한 삶 있었던가
겨울은 춥고
배가 고파도 참아야 하는
적응의 대상 일뿐
화창한 봄날
꽃 몽우리를 떨구고 나면
여름은
태풍 장마 더위 3중 고통
일년 사시사철
푸르러도 푸른 삶 아니다
극락암의 설중동백
김 익 택
하늘 길로 가는 홍교 지나
극락전 옆
돌아 가는 골목길에
붉게 피는 동백꽃
새하얀 모자 쓰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매몰찬 산바람에
춥다고 종종걸음 치고
오는 사람에게는 행여 다칠까
눈 내려 미끄러워 조심하라 하고
바쁘다 서두르며
가는 사람에게는
바람 불어 고개 숙여
행여 넘어질까
불안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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