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잎 하나
김 익 택
물 소리 깊은 곳에
떨어진 단풍잎 하나
하염없이 맴돌고 있다
앞으로 십 년
혹은 몇 백 년 뒤
그 무엇으로 다시
이땅의 주인 될 때까지
땅속 긴 여행은
나를 해체시켜
너에게 양식되고
소금이 되는 시간
죽음이 삶이고
삶이 죽음이 되어
마침내
흙의 삶이 또 다른 삶을
탄생케 하는 것이지
저 산의 단풍
김 익 택
가야 할 곳
정해져 있지만
떠나기 싫은 것은
나뭇잎도 마찬가지일까
저 산의 나뭇잎
소리 없어도 들리는 듯
노랑 빨강의 부르짖음
잘 살았다 행복했다
그러니 아쉽다고
고개를 떨군다
낙엽은
김 익 택
낙엽은
비를 맞아야 잠을 잔다
비를 맞고 곤히 잠들면
내가 아닌 너를 만나
침전 또는 부식되어서
생명 재탄생의
자양분이 되어
꽃이 되고 잎새가 되고
열매가 되는 것이지
황국화의 향기
김 익 택
땅을 머리이고
서릿발이 일어서면
오늘 보다
내일 더
옷깃을 여미는데
하얀 머리이고 피는
황국화는
그 추위 인내하고
피어서 일까
없는듯이 조용히
발산하는 향기
찬바람 외침보다
더 짙다
황국화가 나비에게
김 익 택
소문난 잔치 집
보기 좋지만
남루한 옷차림
발붙일 곳 못 되는 법
오늘 가고 나면
내일은
기약할 수 없는 일
지난 날의 청춘
탓하지 말고
해 떨어지기 전
빨리 다녀가라 한다
국화와 소녀
김 익 택
오지 말라 해도
발길 머무는
그 소녀 집 앞같이
돌담 밑에
옹기종기 핀 국화
눈길 붙잡는다
그 꽃의 향기
찾지 않으면
벌 나비 아니듯
그 소녀 예쁜 미소
긴 세월 지나서도
가슴 설레는 건 여전하다
그 소녀와 만날 기회
꿈보다 어려운 줄 알면서
행여 만날까
나도 모르게
저 쪽
길 모퉁이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