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
(開心寺)
김 익 택
닫혀있는 마음
열어 놓으라고
저 불음의
청아한 목탁소리
봄빛을 빌려
가슴을 비추는데
세속에서 가져온
근심 수심
꽃처럼 마음을 열어
개심사에 풀어 놓고
남아있는
열정만 가져 가라 한다
보이는 것 모두
시련 뒤의 희망은
숨쉬는 동안
내 것 아니라
깨달아야 알 수 있는
삶이 사랑이라고 말하네
開心寺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1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조경철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개설]
개심사의 ‘개심(開心)’은 마음을 열어 깨달음을 얻으라는 의미이며, 백제 때 지어진 사찰로 전해지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개심사 사적기」에 의하면 “진덕여왕 5년, 의자왕 14년에 혜감국사(慧鑑國師)가 서산 개원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개심사 사적기」는 근현대의 기록이며, 기록 가운데 진덕여왕 5년은 651년이고, 의자왕 14년은 654년이라 연대가 일치하지 않는다. 더욱이 개심사를 창건한 혜감이 국사라 했는데 국사 제도는 백제에 보이지 않고 있다. 혜감국사가 개심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는 고려 후기 웅진 출신의 수선사 제10세조였던 혜감국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왕산 자락에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있으며 인근의 예산 화정리 석조사방불상과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서산, 예산, 태안 지역은 백제 시대 지방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개심사의 창건도 「개심사 사적기」에 따라 백제 시대까지 소급될 여지는 충분히 남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건립 경위 및 변천]
「개심사 사적기」에 의하면 쇠락한 개심사를 1350년(충정왕 2)에 처능이 중건하고 절 이름을 개심사라고 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고려 때 폐사된 개심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다시 나타나므로 언젠가 다시 중창된 것으로 보이며, 『성종실록(成宗實錄)』에 의하면 1475년(성종 6) 충청도절도사 김서형이 사냥을 위해 산에 불을 놓아 다시 대웅전이 소실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한여현(韓汝賢)이 지은 서산의 사찬읍지(私撰邑誌)인『호산록(湖山錄)』(1619)에 의하면 개심사는 이미 폐사되어 수풀이 무성하고 절 뒤편에 지은 3칸 자리 부도전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1941년 대웅전 해체 보수 당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1475년(성종 6)에 불탄 대웅전이 9년 뒤인 1484년(성종 15)에 다시 중건되었으며 1740년(영조 16)에 중수된 것을 알 수 있다. 근현대에는 침체된 불교계를 진흥시키고 새로운 선풍을 진작한 승려 경허(鏡虛)가 잠시 머물렀다고 하며, 1955년에 전면 보수하였고, 1983년 2월 28일에 전통 사찰 제38호로 지정되었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무량수각, 심검당, 안양루, 명부전, 팔상전, 범종각, 오층 석탑, 「개심사 영산회괘불탱」 등이 있다, 대웅전 후불벽에는 1676년 조성된 관경변상도의 후불탱화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근래에 도난당하였다. 대웅전에는 보통 석가모니삼존불을 모시는 것이 원칙이지만 지금 개심사 대웅전에는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하고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하는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1676년 조성된 관경변상도가 보통 아미타삼존불의 후불탱화로 그려진 점을 감안한다면 원래 전각의 이름이 극락전 혹은 무량수전에서 후대 대웅전으로 바뀐 것으로 추측된다. 대웅전 왼쪽 벽면에는 1887년(고종 24)에 선옥, 능호 등의 화사가 그린 칠성탱이 있다.
[관련 문화재]
보물 제143호인 개심사 대웅전은 주심포식 건물의 법식과 기법을 따라 전형적인 맞배지붕이면서 공포는 다포로 만든 독특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보물 제1264호인 「개심사 영산회괘불탱」은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명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보물 제1619호인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2004년에 발견된 복장유물에 의해서 1280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조각적인 측면에서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불상으로 평가된다. 개심사 대웅전 서쪽으로 늘어진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398호 개심사 심검당은 맞배지붕이며 주심포계이다.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194호인 개심사 명부전은 맞배지붕이며 공포는 익공계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