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 의미
김 익 택
물은 그릇의 용도를 따지지 않고
그릇의 크기를 따지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시궁창
맑은 샘 터
구별하지 않고 구분하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 환경 그대로
꽃잎에 맺히면 꽃 이슬이 되는 것이고
두엄에 내리면 함께 썩는 것이다
작아서 힘 약하면
용해되거나 분해가 되고
많고 강하면 수용하는 것이다
아무런 불만도 없이
너를 보고 나를 찾다
김 익 택
평생 물속에서 부리를 박고 살아야 하는 버드나무는
제 얼굴을 어떻게 생겼는지 물을 보고 안다
제 살을 할퀴고 가는 바람의 성질도 물을 보고 알고
무덤덤하게 흘러가는 구름의 성질도 물을 보고 안다
사계절 잎 피고 열매 맺고 잎을 떨구어야 하는 시간을 안 것은
오랜 시간 동안 터득한 경험이다
너도 없고 나도 없는
어둠이 밝음을 포식하기 전에는
피안의 세계는 내가 살고 있기에 비쳐지는 모습
내가 튼튼해야 찾아오는 새도 있고 질투도 있다
단풍 너는
김 익 택
화무십일홍도 울고 갈
아름다운 너는
6월의 장미도 울고 갈
붉은 너는
11월 검은 흙으로
돌아가는 너는
그리움이 타버린 마지막 포옹이다
호수의 아침
김 익 택
저 하얀
서늘한 입김은
2억년이 넘도록
살아오는 동안
품에서
태어나고 죽은
수많은 생물의 입김인가
붉은 태양 떠 오르면
현기증처럼
어지러운 안개가
신기루 춤을 추고
저 고요한 물 위에
낮게 앉은
연 잎에 청개구리 울음은
어느 불효자식의 사모곡인가
수초에 맺은 물방울
하나같이 영롱한데
저 산의 물 그림자 위로
백로 날개 짓이 활발하다
11월 나무 그늘 아래
김 익 택
11월 나무 그늘 아래
장대 햇살이 쏟아지고
장대 바람이 쏟아지고
장대 낙엽이 쏟아진다
마침내
11월 나무 그늘 아래는
보여줄 것도 감출 것도 없이
빈 평상만 남아 있다
강가 버드나무가 사는 방법
김 익 택
1년 한 두 번
강물이 둑과 키 재기를 하며 흐를 때
강가 버드나무는
무거운 흙을 겨우 휩쓸고 가는
대 빗자루 마냥
온 몸을 뉘 입니다
가지에 걸린 비닐이 삶을 실험하고
전자 제품 산업 쓰레기들
같이 죽자 붙잡고 늘어져도
버드나무는 더욱 허리 숙여 자리를 내어 줍니다
모래톱에 뿌리 박고 산다는 것은
어미 묘 지키는 청개구리보다 슬픔보다
아픈 삶
비 멎고 날 개면 환희는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겨우 생명부지 한 뱀에게도 삶의 은인
죽음을 이겨 낸 삶은
청동오리와 백로 쉼터가 되고
물수리에겐 망루가 되고
봄 가을 물 안개 짙게 피어 오를 땐
이강도 부럽지 않은
산수화가 되는 것이지요
겨울은 모든 삶의 훈련장
김 익 택
나목의 가지가 추위에 익숙해지는
겨울이 오면
숨어야 할 곳 없는 낙엽들
숨죽인 소리 땅으로 스며들어
흙이 되어야 다시 사는 진리를 배운다
겨울은
누구나 겪어야 할 시련
참고 견디는 것 밖에
햇살이 칼 바람을 녹이지 못하지
언 땅은
살아도 죽은 척 일어서지 않고
언 물은
반항도 시기도 하지 않고
고체가 되고 액체가 되고 기체가 되어
용해되고 융화되어 스스로 정화를 한다
겨울은 그렇게
모든 삶의 시험장
극복의 진리를 가르치는 훈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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