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김 익 택

 

 

 

꽃도 나무도

너무 평범해서

서민적인 꽃 무궁화는

눈 닦고 봐도

아름답고 고귀한 멋

고혹적인 향기

찾아볼 수 없어도

 

많은 자식을 가진

부모의 근심걱정같이

삼복더위 피고지는

일백여 일은

온갖 해충이 잎을 갉아먹는

생명을 시험하는 삶의 무대

 

장마와 태풍

폭우와 강풍을 견디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시작되는

살인적인 더위와 가뭄은

가혹한 형벌 다름없지요

 

종족보존을 위해

생면부지는

삶의 최고 존엄의 목표

찾아오는 벌 나비

반갑게 맞이하는 그대 모습은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돕고 나누는

넉넉한 인정

우리네 삶 믿음을 닮았습니다

 

6,25 오늘 하루

 

 

김 익 택

 

 

 

6월25일 오늘 하루

바람처럼 가벼워도

아픔은 무거운 것인데

 

하늘에서 내리는 비

신록을 적시고 있다

 

그 날

총탄에 쓰러진 억울한 죽음들

새 생명같이 고마운 것인데

 

부는 바람을 피해

돌아 앉아도 부끄럽다

 

무궁화 그대는

 

김 익 택

 

 

 

억울한 귀양살이

푸르게 더 푸르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이 푸르고 하늘이 푸르기 때문이다

 

진실이 풀릴 때까지

모질게 더 모질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살아야 훤히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된 사람들이

침을 뱉고 뱉어도

참고 살아온 이유는

새로운 가지에서 꽃이 피기 때문이다

 

그날을 위해서

단 한 순간도

비굴하지 않는 이유는

세월이 죽지 않는 한 꽃은 피기 때문이다

 

꽃 몽우리가 잘리고

허리가 몽땅 잘려도

더 깊은 곳에 박은 뿌리

돌과 바위 끌어안고 봄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사는 것도 푸르고

기다림도 푸르게 살아

민족의 자긍심 표상으로 활짝 피어 나리라

 

 

 

 

무궁화 꼭꼭 숨어라

 

김 익 택

 

 

 

 

꼭꼭 숨어라

내 마음이 보일라

꼭꼭 숨어라

내 자존심이 보일라

 

무법천지 같은

바람의 소용돌이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하나

 

참 바람 아니고는

결코 볼 수는 깊고 푸른

우물 같은 믿음 하나

 

도둑 같은 밤에도

결코 속을 드러내지 않고

진리 아니면 타협하지 않는

인내로 피는 꽃이어라

어느 6,25 전쟁 미망인의 슬픈 노래

 

김 익 택

 

칠월의 장마 젖은 땅 밟고

북으로 끌려가는 당신은

 

젖먹이 아들보고

잘 있거라 말 한마디 하고 돌아설 때에

언뜻 스치는 당신 이마에

붉은 핏줄 울퉁불퉁 일그러지고

붉게 충혈된 눈······ 울컥거렸지요

 

절벅대며 가는 당신 발자국 소리를

열두 번쯤 들렸을까

 

귓가에 당신 발자국 소리 멀어지다 끓어질 때

쏟아지는 눈물 주체 할 수 없었지요

 

후유······

처자식 남겨두고 죽으려 가는 심정 어떠하고

보내는 내 심정 또 어떡했을까요

·····

십 수년 지나도

당신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돌 박이 어린아이와 홀로 산

세월은 어느덧 반세기 지난 60년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가슴은 뜨거워서 아프고

불쌍하고 애달프고 그리워서

뼈마디가 조목조목 저립니다

 

열여덟에 시집와서

열아홉에 아이 낳고

갓 스물에 사랑 제대로 한번 꽃피우기도 전에

당신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북으로 끌려가고

 

나는 속으로······

속으로

건강하세요 꼭 살아오세요

사랑합니다 그 흔한 말

가슴에 꾹꾹 눈물로 채워두고

우는 젖먹이 아이 부둥켜 안고

돌아서서 심장에 못박듯이

아려오는 슬픔 억지로 참았지요

 

스물둘 당신도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잘 있어라 미안하다 말 한마디 못하고

눈물 보여주기 싫어서

주먹으로 울음 삼키며

서둘러 골목길을 돌아갔지요

 

이것이 마지막인 줄 알면서도

못 보낸다 절대 못 보낸다

입 앙다물고

북한군인 다리물고 왜 늘어지지 못했던지

남편 가슴팍에 매달려 펑펑 왜 못 울었는지

남의 눈이 무엇이고 참는 것 또한 무엇인지

속으로 좋아하고 속으로 그리워해야 했어야

아내의 도리이고 예의인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보바였지요

당신 보내고 난 뒤

많은 세월 눈물로 보냈지요

살을 섞고 피를 섞은

이세상에 단 한 사람

당신에게

안타까운 심정 무슨 말을 못할까

마지막일지 모르는 죽음의 길 가는 길에

무슨 생각이 필요할까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내가

정말

바보 축구 숙맥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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