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혜산서원
김 익 택
처음 보는데도
반가워서 설레고
내 것 아니어도
간직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그 집 헤산서원은
내가 모르는 무슨 연유 있었을까
위엄 없어도 기품 있고
화려하지 않아도 단아하다
지나가는 나그네
문 앞을 기웃대는 거지
문전박대 없고
담을 넘는 도둑도 포용할 것 같은
그 집 혜산서원은
앞뜰 수목에는
새들이 놀다 가고
나비가 놀다 가고
정원 연지에는
바람이 놀다 가고
구름이 놀다 간다
반겨주는 사람 없어도
골목 돌담 기와집 정원 모두가
학덕 인품 모두 갖춘 선비같이
가난 알고 어려움 아는 안방 마님같이
아늑하고 편안하다
상례문 소나무
김 익 택
허리 굽은 할매
동태 구르듯이 달려오는
손자 손녀 반기듯
상례문 소나무는
지팡이 짓고
걸어 나오는
옛날 우리 할매를 보는듯
이게 누고
손자 택이 아잉교
그래 밥은 묵었나
할매는
푸름 속의 미소
껍질 속의 그리움
지팡이 걸음의 반가움이
오래전 돌아가신
우리 할매를 생각나게 해
눈물이 핑 돌게한다
혜산서원 첫 느낌
김 익 택
상례문 좌 우로 줄지어 선
허리 굽은 소나무들이
남녀노소 선악 구별하지 않고
안녕하세요
솔바람 소리로 맞이하고
어서오세요
파도소리로 맞이한다
몇백년 한결같이 손님 맞는 모습
이세상 어느
종교 철학 법률 인문학가가
저처럼 공평할정대할까
보고 있는 내가 거룩해진다
혜산서원 원내를 둘러보면 보면 볼수록
나만의 보석을 발견한 것 같다
빈 집인데도
나를 왜 포근하게 맞이할까
서원 건물과 연지
그리고 정원에 심어 놓은
아가지기한 수목들은
학덕 인품
갖출 것 다 갖춘 선비의 향기같이
저절로 존경심이 우려 나온다
혜산서원 고택의 향기
김 익 택
600년 차나무는 그분의 향기이며
600년 소나무는 그분의 기품일까
헤산서원 이미지
온화하고 평온함은
꿈에서라도 한번쯤 살고 싶은 집
나그네는
더 보고 싶고 느끼고 싶어
고택 여기저기 기웃거려본다
사람의 손길이 뜸해서일까
연지에 잡초와
백일홍과 향나무 가지가 어수선해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다원서당은 품격을 잃지 않고
하늘을 품은 다원제 연지는
평범속에 숨어 있는 보물
나만 그럴까
잊으려해도 잊어지지 않는 그리운 님같이
돌아서는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꼭
다시 찾아오마
밀양 혜산서원
밀양 혜산서원(密陽 惠山書院)은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이다.
1994년 7월 4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297호 혜산서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1]
개요
산외면 다죽리 죽서(竹西)마을에 세거하는 일직 손씨의 5현(五賢)을 받드는 서원으로 본래는 영조 29년(1753년)에 창건한 격재 손조서(格齋 孫肇瑞:1412-?)의 서산서원(西山書院)이 있던 자리이다. 격재는 조선초기 단종의 왕위를 찬탈(簒奪)한 세조의 횡포에 분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충의(忠義)와 탁절(卓節)로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오직 도학에만 전념한 학자인데, 후일에 사림들의 추앙을 받아 이곳에 서원을 세웠으나 고종 5년(1868년)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훼철(毁撤)된 후 그 집을 "서산고택(西山古宅)" 또는 "철운재(徹雲齋)"로 편액하였다.
1971년 서원의 경역을 확장 정비하고 각지에 분산되었던 일직손씨 명현(名賢) 다섯분의 서원 즉, 정평 손홍량(靖平 孫洪亮:1287-1379)의 안동 타양서원(安東 陀陽書院), 격재 손조서(格齋 孫肇瑞:1412-?)의 밀양 서산서원(密陽 西山書院), 모당 손처눌(慕堂 孫處訥:1553-1634)의 대구 청호서원(大邱 靑湖書院), 문탄 손린(聞灘 孫遴:1566-1628)의 대구 봉산서원(大邱 鳳山書院), 륜암 손우남(綸菴 孫宇男:1564-1623)의 영천 입암서원(永川 立巖書院) 등을 후손들의 세거지인 이곳으로 옮겨 복설(復設)하고 혜산서원(惠山書院)이라 편액 중건한 것이다. 서원의 규모는 1,300여평의 대지 위에 사우(祠宇), 강당(講堂), 동재(東齋), 서재(西齋), 상례문(尙禮門), 신문(神門), 중문(中門), 전사당(典祀堂), 신도비각(神道碑閣), 다원서당(茶院書堂), 이이정(怡怡亭), 고사(庫舍), 대문(大門)등 13동의 건물이 경역에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