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당에서

 

김 익 택



 

 

 

 

눈 길 머무는

낡은 현판에

빼곡하게 쓰여진

빛 바랜 한자들

세월에 묵은 때 

고색창연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그의 충성


상상하고 

추론 밖에 할 수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전쟁과 빈곤은

영원한 삶의 숙제


나누고 베푸는 삶 실천했던

그의 위민정신

베풀어서 아름답고

생명 존중이어서 향기롭다

 





































충의당




조선시대 후기의 무신 잠와(潛窩) 최진립(崔震立:1568∼1636)이 살던 집으로, 이전에는 당호(堂號)가 흠흠당(欽欽堂)이었으나, 1760년경 

중수한 뒤 충의당(忠義堂)이라 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사랑채에 해당한다.뒤편에는 정침(正寢)과 

고방채가 있으며, 오른쪽에 신위를 모신 묘우(廟宇)가 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9호. 조선 중기의 무신 잠와(潛窩)최진립(崔震立)의 생가로, 충의당은 

사랑채의 당호(堂號)이다. 우측으로 난 대문채를 들어서면 우측에는 사당(祠堂)이 있으며, 정면 좌측에는 충의당과 경모각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충의당 뒤로는 흠흠당·고방채·정침이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각각 자리잡아 전체적으로는 튼 口자형의 

배치형태를 취하고 있다. 충의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인데 평면은 좌측 2칸을 전면에 퇴간을 둔 온돌방으로 꾸미고, 우측 2칸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가구는 3량가의 간결한 구조인데 대청 상부의 대량(大樑) 위에는 원형판대공(圓形板臺工)을 세웠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一자형 건물로, 평면은 좌로부터 부엌·안방·대청·건넌방이 연접되어 있다.

흠흠당은 정침 우측의 중사랑채 기능을 가진 건물로 4칸 규모의 맞배기와 집이다. 사당은 전면에 툇간을 

둔 3칸 규모의 맞배기와 집인데, 상부 가구는 민가의 사당으로서는 매우 화려하고 섬세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서원과 고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 종오정의 여름  (0) 2019.08.14
경주 내남 용산서원 풍경  (0) 2019.08.12
월연정의 봄  (0) 2019.05.30
수로왕릉의 봄  (0) 2019.05.29
낙안 읍성의 봄  (0) 2019.05.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