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골 사과
김 익 택
그대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앳된 소녀 수줍은
붉은 볼이 생각나고요
그대 새하얀 속살
보고 있으면
새색시 고운 피부보다 싱그럽네요
그대 상큼한 향기는
잊고 있던 그리운 사람
미소같이 신선하고요
그대 시원하고
달콤한 과즙은
인정 많은 사람 인심같이
풍성하네요
그대 희생은
노력하고 수고한 사람들에게
보답
기쁨과 행복을 주고요
그대 사랑은
이 땅의 삶들
가리지 않고
보시하는 살신성인이네요
사과를 깎으며
김 익 택
푸른 칼날에
제 살을 도려내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사과
하얀 속살을 드러내 놓고
접시에 나란히 누워있다
날카로운 앞니가
살점을 찍어내고
우직한 어금니가 맷돌같이
속살을 갈아 먹는다
남은 것은
까만 씨방에
선명한 이빨 자국
황급히 달아난
사과의 영혼
그들을 바라보며 웃는다
제 할 일을 잃어버린 칼
접시 모서리에 누워
새콤 달콤한
깊은 잠에 빠져든다
입과 입
김 익 택
먹고 마시고
말하고 욕하고
진실 거짓 모두
같은 입에서 나온다는 것
향기와 구토
지혜와 권모술수
교양과 무례
지성과 야만
사랑과 폭력
힘찬 것과 고요한 것
한 입에서
공존 공생 한다는 것
맛있는 음식과
깨끗한 음식도
폭식 하면 위가 아프고
식은 죽 잔 반도
감사하게 먹으면
내 몸에 영양소가 되는 것도
한 입에서 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내 속을 닦아서 담은
믿음이 없다면
진실이 없으면
지혜가 없다면
사랑이 없다면
하나 이어도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고 다섯 개 되는 것도
입
한 숨 소리
김 익 택
잠 안 오는
깊은 밤
창가의 흐르는
달 빛이
옛 정취 빌어
그리운데
좁은 방에
한 숨소리가
박수갈채 보다
더 깊다
너의 생각 깊어질 때
김 익 택
너의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해도
나는 너를 의심 못합니다
힘들면 힘들수록
아프면 아플수록
너를 더
잊지 못하는 나는
조울증과 우울증 환자처럼
너를 위한 생각
더욱 깊어져
안절부절 못합니다
가을 만장
김 익 택
저기 구름이
바람을 부르는 하늘
붉은 햇살이
나무 심장에
만장 깃발을 심는다
가야 한다 떠나야 한다
태질하며 재촉하는 바람은
시간이 없다 하고
비밀이 없는 빛은
너를 위한 길이라며
잠시도 지체하지 말라 한다
오는 기회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하듯
이별도 때를 놓치면
인정 사정 없는 매질 뿐이라고
굴러가는 낙엽
쇠 소리가 아프다
씨앗의 꿈
김 익 택
저 떨어지는 꽃잎이
대지를 존경하는
계절이 돌아오면
날아 오는 철새
빈 들에서
아침 밥상 찾느라 바쁘다
멀리 이국 땅 이민을 서두르는
들 풀의 씨앗은
몸 단장을 하고 미소를 잃지 않는다
눈에 띄어야 산다
맛나게 보여야 한다
튼튼한 철새에게
내가 가야 할 곳
몽골 시베리아 또는 미지의 나라
그곳이 어떤 환경인지 몰라도
뜨거운 위장 속에서
돌멩이를 녹이는 위산 속에서
견뎌야 한다
그때까지
배설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