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꽃의 존재

 

김 익 택

 

 

 

 

 

그 꽃이 필 때

보고 싶은 것은

매양 웃는 미소 때문일 것이다

 

그 꽃이 떨어질 때

안타까운 것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 꽃을 보지 않아도

향기로운 것은

내 마음에 깊은 감동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꽃이 없어도

매양 그리운 것은

눈 물보다 더 진한 그리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곡선의 미학 정당성

 

김 익 택

 

 

굴절해야 재대로 나타나는

빛의 성질처럼

직선적인 것은

아픔을 동반합니다

 

짧은 새소리도 곡선이 있고

아이의 그림에도 곡선이 있습니다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곡선의 이해입니다

 

구비구비 흘러가는 강물처럼

날아가는 총알도 알고 보면

곡선으로 날아가고

오케스트라 아름다운 선율도

알고 보면 곡선의 파장입니다

 

우리가 둥글게 살아가는

이유

하늘이 둥글고 지구가 둥글고

삶이 둥글고

사람이 둥글기 때문입니다

 

 

 

여 우 비

김 익 택

 

 

바람을 싹둑 자른다고 바람이 아파할까

물길을 막는다고 정말 허리가 끓은진 것일까

그녀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톱을 깎고

긴 머리 싹둑싹둑 잘려나가는 가위질 소리 상큼하다

노랑머리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만큼

내가 아닌 내가 꽃이 되고

내가 아닌 내가 구름 나비가 되고

거울에서 펼쳐지는 미래 또 다른 세상이다

······이정도 얼굴이면

아무리 노랭이 사장이라 해도······

코딱지 만한 읍내 바닥에 총각쯤이야,

한 밑천 잡는다면

촌 동네에서 썩을 내가 아니지 서울 명동이면 몰라도

가난하지 않았다면 가방 끈이 길었다면

사실

명동이 아니라 뉴욕 파리 밀라노라도 통할 내 얼굴이지

문득 눈동자가 심장을 두드릴 즈음

그녀 이건 아니다 싶어 슬며시

예술가에 눈빛 머문다

“참 가격을 안 물어봤네 얼마예요.”

“이십만원 요.”

“예, 이십만원이라구요?”

“말릴린 몬로 머리 해달라고 했잖아요.”

‘머리에 너무 많은 투자했나 여유돈도 없는데······’

그녀 눈동자를 굴러 주위를 살핀다

사면모두 거울이다

도망 갈 곳이란 예술가를 밀치고 튀는 것 밖에

‘이 머리를 하고 도망을······ 안 돼’

“카드로 하실 거죠?”

‘저 눈치’

그녀 불붙은 내장을 억지로 삼키며 또랑또랑 대답한다

“아니 현금으로 할 겁니다. 할인되죠?”

“예, 삼만원 할인해드립니다.”

그녀 등 짝을 구겨지는 자존심을 뒤로 한 채

여우비 내리는 한길로 나온다

‘호랑이 장가가나’

택시가 오지 않는 거리

그녀는 마릴린 몬로 머리를 손등을 가린 채

햇볕이 쨍쨍한 하늘을 째려보고 있다

아가씨 고속버스 시간 다 되가는 디 뭐 한다요,

목포에 내려서 배타고 갈라 먼 빨리 고속버스 꼭 타야 하는 디

약속 어기면 알지 라잉······

계속 손을 들들 울리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

독촉을 하는데 여전히 택시는 오지 않는다

 

 

 

 

바람의 훈시

김 익 택

 

 

가는 허리 붙잡고 살짝 흔들어도

허공을 떠 다니는

저 민들레 홀씨는

바람이 중매쟁이이고 교통경찰이다

 

바람의 촉수가 살짝 등을 밀어도 허리를 굽히는

저 산마루 갈대는

백발 머리 휘날리며 내달리는 천년 묵은 여우이다

 

머리 풀고 사라지는 귀신처럼

굴뚝의 연기가

한바탕 바람에 요동치는 저녁나절

바싹 마른 잎들을 마당 귀퉁이에 모아놓고

겨울 훈시를 하고 있다

 

제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부를 때 언제든지 떠 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

바람의 입김만으로도 아프다고 서걱대는 소리들

그들에게 바람의 명령 없이는 아름다운 비행은 없다

그렇다고 서로서로 따뜻하게 보듬는다는 것은

부서지고 깨어지고 서로에게 생채기 내는 일 위로는 없다

 

나무에게 가을의 끝은

몸뚱이 하나만 남겨둔 채 모두 버리는 것

버티고 서 있는 기둥 아니고는 씨앗까지 버려야 사는 것이다

푸르게 푸르게 우물에 멱을 감던 감나무는 까맣게 튼 맨 살 드러내야 하고

벌 나비 부르던 돌담 밑 황국은 뿌리까지 다 내어주어야 한다

마지막 한줌 불 쏘시개가 되기까지

빈 마당에 쥐를 몰고 가듯

바람이 가는 낙엽을 몰고 다니는 것은 허튼 짓 하나 없다

 

 

 

나무는 들풀처럼 살지 않는다

 

김 익 택

 

저 소리 없는 아침 들판에

귀가 열려도 들을 수 없는

고요는 어느 분의 침묵이며

입을 다물어도 피는

안개는 어느 분의 입김입니까

 

천근 같은 태양이

가여운 입김을 삼키고 나면

대지는 온통

철없는 새싹들의 웃음소리

고요한 하늘을 누빌 때마다

철들은 나무들은 행여 다칠까

꽃이 피기 전까지 침묵합니다

 

가끔 바람이 불고 새가 울 때마다

가슴에 이는 파문이 바깥 세상을 유혹하지만

그래도 나무는 침묵힙니다

시집살이 3년처럼

어떤 그리움

김 익 택

 

 

이 길을 지나갈 때

한번쯤 생각해 줄래

 

어느 곳 어디에 살든

나와 비슷한 모습 본다면

한번쯤 기억 해 줄래

 

삶의 바쁜 와중에

아스라히 멀어져 가는 너의 기억

 

흐린 날

저편

보듬어줄 사람 없다면

그 자리

내가 가서 안아 주고 싶다

 

너는 떠났지만

나는 언제나 그곳에 있고

가깝고도 먼 거리

그곳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을게

 

네가 외로움이 고여서 울음 터져 나올 때

내가 보듬어 줄게

눈보라가 몰아치는

캄캄한 어둠일지라도

단숨에 달려가서 아픔 나눌 게

고맙다 생각 말고

미안하다 생각 말고

생각나면 언제든지 불러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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