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아이같이
김 익 택
볼을 스치는 바람이
대패날 같아도
개구리 소리에
쑥 잎 돋고
노랑나비 날개 짓에
아지랑이 피면
잎 푸른 냉이 두 팔 벌려
만세를 부릅니다
그래도 눈뜨고 보면
세상은 벌거숭이
산모의 산통처럼
아파서 더 춥고
추워서 아름답게 피는
매화는
아이 웃음소리같이 맑습니다
이른 봄 비
김 익 택
때 이른 봄 비는
얼음에겐 눈물일지 몰라도
땅속 새싹들에겐 모유
태양도 뚫지 못하고
바람도 내통 못하는
깊숙한 곳에서
땅을 뚫고 나오는
힘의 원천이 된다
때 이른 봄 비는
언 땅에겐
서릿발일지 몰라도
이빨이 없어도
송곳 이가 되고
팔 다리가 없어도
천하를 들 수 있는
헤라클래스가 된다
때 이른 봄 비는
눈이 없고 귀가 없고
육신이 없어 생명이 없어도
깊이 스며들어
아낌없이 희생하는
생의 원천이 된다
그 여자
김 익 택
올곧게 뻗은
이지적인 코
산정 호수 같이
맑은 눈
언제 어디서 보았던가
짧은 순간
가시지 않는
긴 여운 놓지 못하고
기억의 너머까지 더듬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여자
호기심 천국이었었던
10대
낙인같이 뇌리에 박힌
고운 소녀
잊을 수도 없고
잊혀지지 않는
그 여자
양떼들 먹이 찾아
사막을 헤매는
아랍 유목민같이
그 여자의 모습 쫓다
잠에서 깨어났다
혼자 잠들지 못하고 있는
TV화면에
거지의 사신 같은
인디아의 화두가
자기가 사랑의 신
카마데바로 화신이라며
자신의 눈 화살이 머무는
태양을 가리키며
사랑은 밤에 온다
잃어버린 사랑 있다면
꿈을 꾸어라 말하고 있다
봄은 오고
김 익 택
비 내리고
먼 산에 안개
실루엣 속살 드리우면
지구가 제 아무리 소리 없이
음속으로 돌아도
땅속에 뿌리 박고 사는 식물은
언제 싹을 틔워야 할지 안다
비 거치고
먼 산에 안개
실루엣 속살 드러나면
봄바람은 찬
바람 속에 묻혀있는 습기를 알고
물은
얼음장이 아파하는 소리를 안다
시간이 제 아무리 소리 없이
앞만 보고 달려도
바다 건너
산을 찾아오는 새
움 틔우는 땅 속의 소식을 알고
언제 집을 짓고 알 낳아야 할지 안다
봄은 누구나 봄
김 익 택
창 밖
배란다에
찬바람이 울고 가고
공원
노송 가지 끝에
녹색이 엷어지면
혼자 살아도
봄은 오고
누가 죽어도
봄은 온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야
건강한 삶이듯
아픈 사람에게도
오는 봄은 푸르다
외로운 사람
괴로운 사람
그리운 사람에게도
무지한 사람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에게도
봄은 언제나 푸르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