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너를 보고 있으면


 

김 익 택


 

 

 

 

일년 내내

바위에 붙어 사는 너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삶이 처절하면

아름다움도 배가되는 것일까

일년에 고작 한달

여름장마에 

너의 푸름은

황금빛보다 싱그럽다


어느 누가 또 

모진 것이 생명이라했던가

모우고 아껴야 할 

주머니 하나 없는

밋밋한 바위에 

붙어 사는 모습은

정말 삶이 신비다



여름 장마 

그치고 나면

삶은 죽음 같은 것이고

죽음은 삶 같은 것인데


생명의 존귀함

생명의 신비함을 

손수 실천하는 

너를 보고 있으면

삶이 수수깨끼다








숲 속의 삶

 


김 익 택


 

 

 

 

계곡의 나무들이

물 먹고 

빛을 소화시켜

푸름을 만들어낸 잎들

너도 나도 미소가 푸르면

 

그의 품에서

깨어난 곤충들은

잎을 갉아먹고

새들은 또

그들을 잡아먹고 사는 삶터


겉 보기에 

조용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먹고 먹히는

생존 투쟁의 장


공포와 드려움 밖에 없는 

삶의 지옥 같지만

빛이 전하는 진리가 있고

바람이 전하는 질서가 있고

비가 이야기하는 소통이 있다









부탁해

 


김 익 택




 

 

 

지는 꽃이

연초록 잎에게 하는 말

 

나 떠난 뒤

맺은 열매

너에게 부탁해

 

책임전가 아니고

변명 아니다

생명 보존 부탁이다

 

네 튼튼한 잎

그늘에서 맺은 열매

토실하게 익을 때까지

 

가을의 진실

잎이 질 때까지






가는 봄의 인사

 

김 익 택


 

 

 

 

빛으로 왔다가

바람으로 가는 봄을 

잡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

초록 인사가 아쉽다

 

잠시 머물렸다

뻐꾸기 따라 

봄이 가고 나면

좋아서 웃고 

즐거워 웃는

의문 뿐인데

 

그 의문 부호와

느낌표에

가슴이 열리면

책장 속에 미소가 고맙다

 

계절의 의미를 깨닫는

연륜이 되고 나면

내년 봄 맞이할 수 있을까

삶의 가치가 

짧은 사람

미소가 가엾다



 








내 유년의 봄



김 익 택

 

 

 

 

 

 

진달래 꽃이 피는 

3월이 가고

연달래 꽃이 피는 

4월이 오면

개울가 올챙이 

다리 나오는 5월은

우리 아버지 

무논에 쟁이질 소리

이산 저산 

메아리 되어 울려 퍼졌지요

어제같이 눈에 선해도

요즘 아이들에겐 전설이지요

그렇게 시작된 농번기는

가을 추수까지 

긴 노동의 시간

일과 일속에 묻혀 살았지요

같은 항렬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벌초와 제사를 

 생일보다 먼저 챙겼지요

그들의 봄은

꽃이 피워도 아쉽고

꽃이 떨어져도 그립습니다




 









봄 아주 잠깐

 


김 익 택 

 

 

 

 

 

벚꽃이 피었던가요

천둥이 쳤던가요

창밖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네요

 

노란 우산을 쓴 아이

바삐 걸어간 빈 자리에

비가

하얀 꽃잎을

마구 짓 밟고 가네요










오월은 아름답다


 

김 익 택

 

 

 

 

 

꽃이 피었다 지는 건

잠깐


연초록이 부르는 노래

화답하는 것도

아주 잠깐


신록이 합창소리에

자취를 감추고 나면


온 산은

직접 들어가지 보지 않으면

모르는 비밀정원


착각이며 

상상일지라도

오월은 싱싱해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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