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너는
김 익 택
연약한 가지마다
노란빛을 발하는
저 꽃의 비밀은
사랑이 아픈 나머지
염원이 농축된 눈물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실 바람밖에 불지 않는
화창한 봄날에
감격해서 흐르는 눈물같이
가슴 아리도록 아름다울까
다시 4월이 오면
김 익 택
매화 진자리에 벚꽃피고
산수유 진자리에 진달래 피는
4월이 오면
하늘여행 떠나신 우리 할매
산불 난 검은 자리에 나물 캐던
모습이 어제처럼 선합니다
다시 4월
철모르는 산 노루 새끼 온 산야 누비듯
미친년 입술처럼 진달래 따먹던
어린 시절들이 어제처럼 새롭습니다
다시 4월
우리 엄마 아부지
아직도 시린 찬물에 발 담그고
논 갈고 벼 파종하던 그때가
늙음보다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다시 4월
즐겁고 신나는 초록시절은 덧없이 가고
시험과 시험 올가미에 갇혀
청소년시절 지겹게 아팠습니다
다시 4월
나라 위한 몸 3년 보내고
내 희망의 삶은 저 멀리 아지랑이
사랑과 방황으로 보낸 하루 하루가 짧았습니다
다시 4월
내 너를 알고부터 세상은
지상의 최대 행복
내 사랑 님을 만나 결혼을 하고
행복한 미래설계 끝나기도 전에
아이 낳고 교육시키고 정신 없이 살다 보니
내 얼굴에 주름을 느낄 사이 없이
찾아온 늙음
오랜만에 만난 친구 얼굴보고 나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지천명
아이 결혼준비에 등 줄이 후끈한데
심심찮게 듣는 할아버지 소리
허리가 휘고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봄의 환
김 익 택
아이야 빨간 꽃이 피고
노란 꽃이 피었더냐
스치듯 지나가는 짧은 봄
너의 뇌리 속에
이 봄도 길었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꽃 구경
네가 어른 되고 아이 낳으면
얘기해주고 싶도록
숨은 그림자 같이 기억 나지 않는
그런 추억 아닌
즐겁거나 괴로울 때
네 마음에 기억되고 회자되어
위로가 되는
오늘이 그날처럼
아름다운 추억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네가 있어
내가 있는 사회에서
더불어 잘 사는 네가 되기를
가족에게 사회에서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름다운 구성원이 되기를
엄마 아빠는 네가 밑그림이 되기를
그 소녀
김 익 택
그게
관심이었던가요
사랑이었던가요
미움이었던가요
그 소녀
좋아하면 좋아하는 만큼
실의에 빠져
그 소녀는 내 마음을
아프게 했지요
마침내 깊은 사념은
삶의 1순위가 되었을때
소년은
가족 따라
그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 날 이후
슬픔과 그리움은
꽃이 피면 피는 대로
눈물로 보상을 받았고
꽃이 지면 지는 대로
외로움과 아픔은
상념으로 메웠습니다
언제쯤
기억이 아프지 않고
아름다운 추억 될지 모르지만
우리 딸
그 소녀 나이가 되는 지금까지
그리움은 현재진행중
그 소녀 기억은
세월이 기면 갈 수록
배가되어
아파서 아름다운
보고가 되었습니다
봄날은 간다
김 익 택
묻지도 않고
부르지 않고
보내지 않고
붙잡지 않아도
바람 불고
비 내리고 구름 가듯
봄날은 절로 가네
올해도
봄날은
시골 총각
가슴 여미는
뻐꾸기 소리같이
자기 삶에 열중하는
도시 처녀
빌딩 사이
훌쩍 뛰어넘는
구름 그림자같이
지나가네
봄 날 아침에
김 익 택
하늘 화폭에
그려 놓은
저 노을 속에 붉음은
어디서 왔을까
그저 보고만 있어도
희망찬데
저 산의 초록은
또 어디서 왔을까
간밤에 내린 비
간밤에 불었던 바람을
포용한 땅이
버물러 만든
빛의 발효가 시작 되는
이 아침은
환생일까
탄생일까
채움일까
비움일까
순간순간 변하는
경이적인
저 자연의 신비는
끊임없는 자기 개혁일까
새순
김 익 택
지난 겨울
차디찬 땅속에서
얼마나 고생 많았니
죽지 않으면 만날
천상의 봄을
다시 못 뵐 님 기다리듯
모질게 참았구나
그래도 너는
통통하게 살쪄서
티없이 맑게
활짝 웃고 있구나
꽃 진 자리의 약속
김 익 택
화르르 피었다 지는데
고작 십일
그래 가거라
말없이 미련 없이
서러움도 없이
후루루 지고 말거라
그립지도 않는 아쉬움은
모질게 달라붙어
시든 모습 아니라
기억도 없고 기약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리라
화무십일홍이
그리운 것은
꽃 진 뒤 비로소 맺는 열매
진한 아쉬움
하지 않아도 지키는
약속 때문이리라
꽃 비
김 익 택
나뭇가지에서
땅바닥까지 그 짧은 거리
마지막 가는 길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은
부드러운 바람이
입맞춤했기 때문이다
가을로 돌아갈 수 없는 겨울은
찬바람이 매서울수록
오는 봄을 얘기하고
진초록이 짙을수록 여름은
빨리 오는 가을과 멀어지고 싶어한다
남기고 가는 씨앗은
막을 내려도
긴 여운이 가시지 않는
가을은 축제의 장
비처럼
바람처럼
떨어지는 저 꽃 비는
이별은 순간이어도
영원이 사는 씨앗같이
순간이 삶이고 순간이 예술이다
곡선의 미학 정당성
김 익 택
굴절해야 재대로 나타나는
빛의 성질처럼
직선적인 것은
아픔을 동반합니다
짧은 새소리도 곡선이 있고
아이의 그림에도 곡선이 있습니다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곡선의 이해입니다
구비구비 흘러가는 강물처럼
날아가는 총알도 알고 보면
곡선으로 날아가고
오케스트라 아름다운 선율도
알고 보면 곡선의 파장입니다
우리가 둥글게 살아가는 이유
하늘이 둥글고 지구가 둥글고
삶이 둥글고
사람이 둥글기 때문입니다
꿈 같은 지난 날은
김 익 택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위대했던
내 어린 시절
봄날 그 오솔길에는
나비가 춤추고 벌은 노래하고 꽃은 웃었다
지금은
모든 삶이 돌아 앉은
그날 그 길을
소 되새김질 하듯
곱씹어며
동무를 생각하며 걷는다
그래도 그리우면
조용히 눈을 감고
어두워도
집으로 돌아갈 줄 모르고 놀던
친구 이름을 부르며
눈물로 얼룩져도 아쉬운
가슴 길을 걷는다
누군가
김 익 택
누군가는
고래 심줄 같은 목숨
벽시계에 걸어 두고
바삐 달려가고 있고
누군가 부스러기 같은
목숨 부싯돌에 지핀 불을
한지에 붙이려고 달려오고 있다
누군가는 아침에는 기억하고
저녁이면 잊어버리는 약속을
지켜보고 있고
누군가는 날마다 공짜 같은 시간을
빨리 가자 재촉하고 있고
누군가는 복권을 돈처럼 만지작거리며
내 세상을 만드는 꿈을 꾸고 있다
춤추는 봄
김 익 택
태양이 삶을 일깨우는 자리마다
꽃들은 서둘러 연애를 하고
바람은 나무에게 속내를 들어내지 말고
조용조용 실속을 챙기라 합니다
엉키고 설킨 가시 넝쿨 속에서도
사랑은 아름답듯
헝클어진 북데기 속에서도
행복한 소리가 가득합니다
저 만치 걸어 가는 젊음
김 익 택
무엇을 생각했는지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이유 분명 했는데
기억이 없다
내가 내 정신을 의심하는
심심찮은 나이가 되고부터
저 만치 앞서가는
젊은이들의 웃음 소리가
복사꽃 보다 싱그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