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릇 - 1
김 익 택
사랑하는 님
보지 못해
땅도 그립고
하늘도 그리울까
외 줄기에 끝에 매달린
속 눈썹 같은
꽃 망울
눈이 아리도록 붉고
꽃잎마다 맺힌
하얀 이슬
열여덟 처녀
눈물같이 해맑구나
꽃무릇 - 2
김 익 택
송림 사이
내리 쏘는
부채 햇살에
더 붉게 타는
은하사 꽃무릇은
사랑 아니면
알지 못하고
사랑 아니면
이해 못하는
그 속 깊은
사연 뭔지 몰라도
그 붉은 빛
가만히 보고 있으면
늙어서
눈 어두워도
절로 느껴지는 메시지
아
그 어떤
사랑
서릿발 같이
아픈 그리움 징표이리라
10월의 들꽃 이야기
김 익 택
찬이슬 맞으면 피는 들꽃은
알아주지 않아 더 향기로운
삶의 아픔을 아는 꽃이다
차마 하지 못한 말
가슴에 묻어두고 홀로 삭이다
마침내 내린 이슬이 울음을 터뜨린
그리움 그 끝에 피는 꽃이다
색이 다르고 향기가 다른
그 꽃들이
주절주절 풀어내는 이야기는
베풀어서 아름답고 나누어서 향기로운
대자연의 진리를 담을 꽃이다
겨울이 있었기에 봄이 있었고
봄이 있었기에 여름이 있었고
여름이 있었기에 가을이 있듯이
제각기 다른
그 꽃들의 빛과 향기는
참고 보듬고 머금어서
기어코 나를 찾아낸
세상의 하나 밖에 없는
삶의 이야기다
바람이 전하는 말
김 익 택
당신 둥근 땅
구석구석 돌고 돌아 여기까지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극적인 감격 감동
무차별 슬픔 아픔
의인 가해 인
암수동체
무심 허심 인정사정
하나 없는
자연의 진리 전령사인 당신
보고들은 얘기
이루 말 할 수 없는 정보
입 꾹 다문
정체불명 떠돌이 당신
당신 그 동안
많은 날 삶들에게
병 주고 약 주더니
오늘은
사랑 그 밖에 고맙다는 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당신 여기
대한민국 머무는 동안
산에는 꽃과 단풍
들판에는 곡식과 과일
사람들 맘에는 기쁨 환희
더 맑은 하늘
황금 빛 산하
결실들이
하루 다르게 여물고 있습니다
축복 주고 행복 주었으니
삶들이 마련한
축제의 장에서
아리랑
어깨 춤에
잠깐 숨 돌렸다 가시구려
이 가을에 피는 들꽃
김 익 택
이 가을
수난 속에 피는 들꽃을
우연히 본 사람들은
아름답다 귀하다며
사랑의 눈길 보내지만
그도 알고 보면 엄연한
이 땅의 주인
구색을 갖추기 위한 생명 아니다
살아야 할 당위성
생명의 존엄성은
그 어느 삶과 마찬가지
온 세상을 뒤덮었던 풀들이
하나 둘 꽃 지고 잎 진 뒤
홀로 꽃을 피우는 것은
종의 생산 의무를 다하기 위한
노력일 뿐
사치 아니고 동정 아니다
꽃 무릇 너는
김 익 택
너의 얼굴에 맺힌
이슬방울
포동포동
예쁜 아가 얼굴
물방울 같아라
너의 곱게 뻗은
실오라기 꽃술
깜짝 놀라
눈 치켜 뜬
새 아씨
속 눈썹 같아라
꽃무릇 그 매혹적인 빛
김 익 택
눈이 시려
볼 수 없고
가슴 아려
외면하고픈
저 붉은 빛
한계는 어디이며
정체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붉은 빛
원형은
아픔을 넘어서서
죽음에서 돌아온
깨달은 빛
그것 아니고서야
저렇게
매혹적일 수는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