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내력
김 익 택
얼음이 자라는 날은
바람새가 웁니다
쩡쩡 가슴 찢어지는 소리로
귀가 얼고 손가락이 아리고
발가락이 아린다고
휭이휭 휘파람소리로 전해도
보름달은 못 본 척
구름 속에 숨고
별들은 귀를 닫은 채
눈만 깜박거립니다
마침내 인내 한계의
빙 점에서
단단한 고체가 되기까지
바람새는 추워서 앓은 만큼
더 견고해집니다
그리고 또 한번의 변신
인내의 정점 기화점에 다다라면
바람새는
하늘로 인도하는 안내자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지의 어머니 모유가 되어
깊은 땅으로 스며듭니다
함께 사는 삶의 지혜
김 익 택
알고 보면
너도 착한 사람 나도 착한 사람
알고 보면
너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한 사람
잘났다 못났다
내세울 일 없고 싸울 일 없지요
세월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진리의 파수꾼입
매몰찬 겨울 바람 지나가면
따사로운 봄바람이 불어오고
무더운 여름 바람 지나가면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지 않던가요
알면서 지나치고
모르면서 지나치는 사이
가슴에 쌓이는 먼지는
때가 되고 녹이 되어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기 전에
내가 있던 자리
깨끗이 치워 놓는다면
그 다음 오는 사람 미소가 아름답듯
나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는 버릇은
너를 위한 고생이 아니라
나를 위한 행복이기도 하지요
세월 가면
김 익 택
세월 가면
너무 미워서 가슴이 기억하는 것도 있고
정말 고마워서 뇌리에 늘 되새기는 것도 있다
그것 말고도
아름답고 아프고 외롭고 쓸쓸해서 기억하는 것들은
문득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되는 것인데
세월은 그냥 가는 것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고운정은 햇빛에 바래고
미운정은 바람에 닳아
한데 어울려 어깨동무하고 다니는 아이처럼
친구가 된다
되돌려주지 못한
앙금 같은 미운정은
시간의 뻘 밭에서
스스로를 정화하고
두고두고 갚으려던 고운정은
맘의 빗으로 고여 있다가
비 내리는 연 밭에
중얼대며 걸어가는
스님의 발자국이 된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가면
고운정 고운정은
그립고 아쉬운 세월의 친구가 되고
아프고 괴로운 바람의 친구가 되는 것이지
세월 가면
시작은 달랐지만
서로 소통하는 이야기가 되어
전설처럼 풀어져 나오는 추억의 얘기가 된다
바람의 진실
김 익 택
바람의 진실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다
너만 알고
나만 모르는 것 아니라
끝없이 움직이며 소통하는
자가 통신이다
바람의 진실은
보이지 사랑의 매개체다
제 너머 고양이 암 냄새
숲 속 들꽃 벌 나비에게 전달하는
연애 통신이다
바람의 진실은
입을 다문 침묵 하는 자
어제 오늘 일어나는
죽고 사는 비밀
모두다 알고도 입은 다문
양심의 심판자다
살다 보면
김 익 택
절대절명과 일사천리가 만났다
일사천리는
자기 잘못을 운이 나빴을 뿐이라 생각하며
앞만 보며 달리고
절대절명은
자기 잘못을 실수라고 생각하며
과거를 되 씹는다
돌아가야 사는 팽이처럼
달려야 사는 자전거처럼
숨 가쁘게 살다 문득 하늘을 보면
하늘에 별이 저렇게 많은 지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처럼 신기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