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연대에서
김 익 택
해 뜨면
집 떠나는 백로
달 뜨면
집으로 돌아오는 기러기
그 옛날 선비 화신일까
월연정을 앞을
날아가며 우는 소리가
시인의 귀에는
그 옛날 선비
시를 읊는듯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때로 몰려오는 관광객들 소리에
제 정신을 차린다
단풍
김 익 택
내 어깨에
바람 무게가 느껴지고
들숨 날숨 쉬는 것이
힘 드는 나이가 되면
저 눈이 시리도록
노란 은행잎이 하는 말과
저 눈이 충혈되도록
빨간 단풍잎이 하는
그들의 말 알아 들을 수 있을까
월연정 은행잎 비
김 익 택
구름 흘러가는 곳에
달빛이 흘러가고
강물이 흘러가는 곳에
월연대가 흘러가는
깊어 가는 가을밤에
달빛 홀연히
월연대를 비추면
구름이 강물이고
강물이 구름인데
오백년 은행나무
노랑 잎이
바람 없는 달빛에 꽃비처럼
강물에 떨어지네
낙엽이 가는 길은
김 익 택
떨어지는 낙엽에게
선택이란 낱말은
자연의 거스르는 말
마냥 바람에 떠밀려
허공을 헤매다가
곤두박질쳐 떨어진
낯선
그 어느 곳
빛에 바래고 흙에 묻혀
낙엽이란 이름과 성분
흔적 없는 그 뒤
다른 삶의
뼈가 되고 살이 되어
내가 아닌 너의 새로운 기적이 되는 것이지
은행잎을 만지며
김 익 택
무슨 소원이 있길래
머금은 그 노란 빛
마지막 떨어지면서까지
가슴 여미는 것일까
가여운 것은
그리운 것은
모름지기 생명이 끝날 때
더 안타까운 법
삶이 끝난 한갓 낙엽
이제는 삶이 아니다
네가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네 모르게 피해를 입힌 그들의 삶의 몫
어디로 가고
무엇이 되는 지는
이생에서 풀 수 없는 일
알아도 부질없다
그래
세상의 삶의 끝은 그런 것
나도 너처럼
어느 삶의 눈길에 삶의 의문 하나 던져주는
노란 맘 그런 주검이 될 수 있을까
밀양 월연정
월연정(月淵亭)은 경상남도 밀양시 용평동에 있는, 조선 중종 15년(1520) 월연 이태 선생이 지은 건축물이다.
1985년 1월 14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243호 월연정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1]
개요
월연정은 조선 중종 15년(1520) 월연 이태 선생이 지은 것으로 원래는 월영사가 있던 곳이다.
이태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성리학에 입각해 개혁정치를 추구한 조광조 파가 죽음을 당하는 기묘사화(1519)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월연정의 대청인 쌍경당은 임진왜란으로 불탔으나 영조 33년(1757)에 월암 이지복이 다시 지었다. 그리고 고종 3년(1866)에 이종상과 이종증이 정자 근처에 있는 월연대를 보수하고 재헌을 지었다.
월연정은 앞면 5칸·옆면 2칸으로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쌍경당에는 문을 달아 열면 주위 경관을 볼 수 있게 했으며 방, 아궁이를 설치해 4계절 두루 살 수 있도록 했다. 재헌 또한 앞면 5칸·옆면 2칸의 규모로, 대청·방·대청의 형태로 지었다. 제일 높은 언덕에 있는 월연대는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중앙 1칸만 4면에 미닫이문을 단 방을 만들었다.
경관이 뛰어난 곳에 모여 있는 이 모든 건물들은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정자의 기능을 가지며 각기 다른 형태로 지어져 있어 흥미롭다. 이 건물들 외에 탄금암, 쌍천교 등의 유적과 백송, 오죽 등의 희귀한 나무들이 있다.
월연대는 추화산(243m) 동편 기슭, 밀양강과 단장천이 만나는 지점의 절벽 위에 조성된 정자이다. 1520년(중종 15) 함경도 도사 이태가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여 월영사(月影寺)라는 옛 절터에 월연대와 쌍경당(雙鏡堂, 월연정)을 지어 별서(別墅; 별장)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다. 월연이라는 호를 쓴 이태는 자신을 월연주인(月淵主人)이라 불렀다.
임진왜란 때 건물이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가 1757년(영조 33) 쌍경당을 중건하고 1866년(고종 3) 월연대를 복원하였으며, 1956년 제헌(霽軒)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제헌은 이태의 맏아들인 이원량(李元亮, 1504~1567)을 추모하는 건물이다.
'월연(月淵)', '쌍경(雙鏡)'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달의 경관과 관련이 깊은 곳으로, 특히 월주경(月柱景; 수평으로 길게 이어진 강에 비친 보름달이 달빛기둥을 이루는 풍경)이 아름다워 월주가 서는 날인 기망일(旣望日; 음력으로 매달 열나흗날)에는 월연대에서 시회(詩會)를 열었다고 한다.
월연대 일원의 건물은 경치를 감상하는 정자의 기능을 가지지만 여느 정자와 달리 각기 다른 지대에서 다른 방향으로 지은 건물군을 형성하고 있어 독특하다. 즉, 월연대는 가장 높은 언덕에 남향으로, 쌍경당은 중간 높이 지대에 동향으로, 제헌은 가장 낮은 곳에 남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 외에 쌍청교(쌍경당과 월연대 사이를 잇는 다리), 탁조암(강기슭의 반석), 죽오(쌍경당 서편 언덕의 대숲)를 비롯하여 영월간, 수조대, 행단, 한공이공대, 백송 등이 경관을 구성한다.
월연대 일원은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뒤로는 추화산이 있고 앞으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이 동천과 합류해 남하한 단장천과 만나 흐르고 있다. 멀리로는 용두산, 꾀꼬리봉, 금오산이 보인다. 풍광이 뛰어나 ‘월연대 12경’이라 불리는 경관들이 있지만 강 상류에 댐이 생긴 후 퇴적물이 급증하고 강물이 줄어 월주경을 볼 수 없고, 월연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예전만 못하다. 그럼에도 산과 하천이 조화를 이룬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우며, 오랜 역사를 지닌 별서로서 관련 문헌과 그림도 남아 있는 등 역사적·문화적 의미가 있다. 2012년 2월 8일 명승 제87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