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에게 봄비는
그대 아시나요 목이 타고 몸이 말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기다림을
아무리 제의지대로 사는 삶 없다지만
삶도 죽음도 기다림
나는 단 한번 삶의 의무 잊어 본 적 없습니다
누구는 삶을 의무라고 사랑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삶은 행복입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삶도 많습니다
봄에 내리는 비는
그냥 봄비 아닙니다
삶이며 행복이며 눈물이며 사랑입니다
봄에 내리는 비는
김 익 택
3월 첫날 봄비가 내린다
저 투명한 물방울 비치는 세상
땅에 떨어지면
초록 생명의 밑거름
그러고 보면 참 많은 삶을 품었다
희생해서 생명이 되어
잎이 되고 꽃이 되고 열매 되어
이 땅의 삶 식용이 되고
죽음 아닌 삶 넘나 들는
만물의 근원을 생각하면
위대함을 따지면 그만함이 있을까
매화 맺힌 빗방울은 눈물인가요
김 익 택
매화 꽃잎에 맺힌
해맑은 빗방울
봄의 눈물인가요
촉촉하게 검은 가지를
적시고 있는 모습
그리움인 듯 슬픔인 듯
내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
아니면
내 마음이 울적 한 가요
꽃잎에 맺힌 빗방울이
아무리 맑아도
눈 큰 아이 눈에 맺힌 눈물 같아
예뻐도 웃을 수 없고
반가워도 웃을 수 없네요
무엇을 위로할 수 없는 나는
빗방울 살짝 털어주고 싶지만
그것마저 아플까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매화는 시인의 눈으로 운다
김 익 택
아파도 달콤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슬퍼도 맑은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천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파도 슬퍼도 스스로 울 수 없어
내리는 비를 빌어 울지만
그대가 흘리는 눈물은
감정 없으면 보이지 않아
몸은 늙어 곧 쓰러질언정
반가우면 동심으로 웃고
참지 못할 괴롭고 서러울 땐
화가의 눈으로 울고 시인의 눈으로 운다
비를 맞고 있는 매화를 담으며
김 익 택
피어서 아흐레가 지나면
지팡이로도 간신히 걸을 수 있는
구순의 나이
가만 있어도 오늘 내일인데
의심없이 내리는 봄비가
막바지 매화 꽃잎을 마구 후려치고 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색을 잃고 생기 잃은 모습 역력한데
오늘 아니면 그 모습도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아
앵글을 돌리고 초점을 맞추어 보지만
그에게도 나에게도 예의 이닌 것 같아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그래도
추하면 추한대로
아름다우면 아름다운대로
그의 참 모습 담기 위해
아침 한나절 이별 통보 같은 비를 맞으며
맘과 정성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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