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달밤 기러기
김 익 택
달빛을 벗 삼아
날아가는
저 기러기는
기억 아니면 시옷
단 두 글자로
소통하면 날아간다
지치면 참아라
처지면 힘내라
서로서로
위로와 용기
북 돋으며
선두에서 이끌면
후미까지 밀듯이
흐트러짐 하나 없이
보름달 등에 업고
구름을 그늘 삼아
남쪽으로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주남지의 겨울 풍경
김 익 택
꽁꽁 얼어붙은 호수에
오리 때가 날아든 날
찬 바람밖에 없던
호수의 얼음은 반가운가
쩡쩡 거리며 운다
차가워야 껴 안을 수 있고
차가워야 하나되는 결정
찾아 오는
그들도 알고 있었을까
미끄러워 넘어지는
그곳에 한데 모여
꽥꽥 끼룩끼룩
안전하다 쉬어라
주고 받는 소리
저수지에 가득하다
기러기 가족의 한글 공부
김 익 택
달 밝고
날 찬데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가족
날아가면서
ㄱ ㄴ ㅅ
글을 쓰고
날아가면서
가갸 거겨
외우며 가네
주남지의 삶들
김 익 택
얼음이 쩡쩡 울고
칼 바람이
살갗을 도려내는 날씨에
유유히 헤엄치고 돌아 다니며
수초를 뜯어먹는 고니 떼와
얼음 숨구멍으로 자맥질을 하는 오리 떼
꽥꽥 끼룩끼룩
서로 경계하는 소리로
넓은 저수지는 난장판
삶은
힘의 원리로
질서가 정리되는
그들 삶들이
찬바람같이 냉정하다
철새에게 인간은
김 익 택
도저히 잡을 수 없는
벗어난 사거리에 있어도
사람만 보면 날아가는 철새는
사람이 악마다
먼 태고 적 때부터
헤아릴 수 없는
믿음의 후회가 낳은
경계해야 할 삶의 철칙이
지금의 유전자가 된 것이다
삶의 무서움은
단지 먹이 밖에 생각하지 않는
무리들
새 머리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그들에게 생존의 보존이란
눈 밖에서 벗어나는 일은
36계 줄행랑 밖에
주남지 저녁풍경
김 익 택
반갑다는 소린지
경계하는 소리지
어둠 뚫고 들려오는 소리에
어둠은 짙어가고
차가운 밤바람에
얼음 어는데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지
붉게 물든 황혼에 젖은 날개가 바쁘다
꽁꽁 언 얼음 위가
편안한 잠자리인가
해거름 타고 내려 앉는 오리 때 착지에
넓은 주남지 얼음판이 비좁다
주남지의 노을
김 익 택
서쪽 하늘이 불타는
날은
주남지도 불이 탄다
구름은 물속에서
붉게 타고
허리 꺾인 연줄기는
하늘에서 물에서
세상 천지 타는 불을 보고 놀라
주남지에 머리 처박은 채 불 구경을 하고
날아가는 철새는
불구덩이 속을
마술같이 통과하며 지나간다
서쪽 하늘을
온통 붉게 태우는
그 불은
주남지 차가운 물에서
한번 더 붉게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