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의 믿음
김 익 택
거기 있어도 없는 듯
보듬어줄 손 없어도 안락한 어머니같이
말하지 않아도 얘기를 들어주는 아둔한 친구가 너였음을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알았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아이
깊은 슬픔 끌어 안아주는 어머니니 같이
아늑한 흙 냄새가 너였음을
단단히 박힌 가슴의 울음을 달래주는 것도
너였음을 알았다
술 취한 사람
오줌을 누고 가래를 뱉어도
말하지 않고
집 나간 아이
담을 훌쩍 뛰어 넘어도 모른 척 하고
불효 자식 집으로 돌아와 담 밑에 서성거려도
외면하지 않는 믿음이 너였음을 알았다
도둑을 지키는 일
내실의 소리
감싸 돌 줄 아는
소리 없는 문지기가 너였음 알았다
키 큰 총각 누나 동정 살필 때
목을 내주는 아량도 너였고
뭇 총각들 휘파람 소리 부엉이 소리도
눈감아 줄지 아는 너였음을 알았다
흙과 돌
비바람에 묵묵히 다져 진 인내
죽어도 입을 열지 않는 믿음이
너였음을 나중에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