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왕릉 능소화

김 익 택

 

 

 

 

 

수로왕릉 담장에

살포시

고개 내민

능소화 한 송이

 

8월 삼복더위

아랑곳하지 않고

턱 괴고 앉아 노는

어린아이같이

해맑기 하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들을

네가 구경하고 있는 것인지

 

가는 사람

오는 사람들이

너를 구경하고 있는 것인지

 

모델 된

너도 웃고 있고

사진을 담고 있는

나도 웃고 있다

 

 

능소화 님맞이

 

김 익 택

 

 

 

 

 

저기

대문을 옆에 두고도

담 밖을 기웃거리는

그녀는

이미 부푼 가슴

 

얼굴이 붉은 것은

님 소식

기다리다

이미 애간장이

타버렸기 때문이다

 

2020년 유월의 짜증

 

김 익 택

 

 

 

 

더운 바람이 문 열고 들어오는 날

집안의 찬공기가 화들짝 놀라 밖으로 도망쳤다

전기료가 아까운 주인은 재빠르게 문을 닫았지만

더운 바람이 에어컨 바람구멍을 가로 막았다

주인은 애꿎게 날씨를 탓하자

밤잠을 못 잔 에어컨이 피곤하다고 불평을 드러냈다

가슴이 훤히 드러내고 다니는 주인 아가씨

소파에 들어 누웠다

땀방울이 등짝에 달라붙어 끈적거렸다

주인 아가씨 욕실로 들어갔다

아니 수돗물도 따뜻하네

이 놈에 코로난가 코비든가 언제 끝나려나

어후 미쳐

6월의 비

 

김 익 택

 

 

 

 

6월의 비는

초록을 가꾸어도 가볍지가 않다

눈물이 희망이고 슬픔이 밑거름임을

결코 헛되지 않게

이 악물고 악전고투 싸워 물려준 희망 유산이다

 

천방지축 좌충우돌

산하를 적시는 6월의 비는

앞을 봐도 뒤를 봐도

화약에 절인 민둥산을

푸르게 더 푸르게 가꾸어 온 고마움의 춤이다

 

잘 살면 개을러질까 편하게 잊을까

고생 몰라 나약 해 질까

인내 근면 성실 삶의 밑천 잊을까

잘 살아도 걱정 못 살아도 걱정

자나 깨나 안절부절 못하는 눈물이다

 

 

사랑이 정의를 묻다

 

김 익 택

 

 

 

 

 

사랑이 말을 하던가요

아름다움이 귀가 있던가요

미움이 눈이 있던가요

아픔보다 더 간절한 그리움

슬픔보다 더 괴로운 외로움은

그 원인은

이유불문하고 사랑이라고 말들 하지만

세상에 아름다운 말은 사랑

세상에 더 슬픔 말 또한 사랑

좋은 말 쉬운 말 어려운 말 또한 사랑

누구나 하는 상투적인 그 말

해도해도 아쉬운 그 말 또한 사랑

사랑이 정의에게 물은 듯

아름답다 그 말 밖에 무슨 말이 또 있을까

 

시어의 고갈

 

김 익 택

 

 

 

 

 

 

사람은 늙어도

글은 늙지 말라는 시인의 말

가까워도 먼 당신같은

공감하는 좋은 말

 

긁고 긁어도 간지러운 발가락의 무좀

손이 닿지 않는 등의 간지러움 같이

내가 내 가슴에

빡빡 바가지를 긁어도

 

생각과 상상은

의미가 따라붙지 않는다

말라버린 우물에

폴폴 일어나는 먼지같이

 

언제 시 같은 시를

 

김 익 택

 

 

 

 

아이의 눈으로 찾을 수 없고

부모의 눈으로 쓸 수가 없는

가슴 뜨끔하게 하는

한 줄의 시

독수리 눈으로 볼 줄 알고

돌고래의 초음파로 들을 수 있고

들개 코로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늑대의 소리를 알 수 있는

그 날이 오면

비로소

시 같은 시

한 줄을 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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