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한 길
김 익 택
어느 날 문득 생각이 길을 물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삶이 얼마나 보람되게 살았는지
길을 걸을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물을 밟지 않았는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사는 것인지
아주 사소한 것 근본적인 것부터 웅대한 꿈까지······
노란 개나리 흐드러지게 피고
산 허리에 눈 녹고 앙상한 나무 숲에서 진달래가 피면
문득 지나온 시간이 앞으로 또 어떻게 살 것인지 길을 묻습니다
그때 나는 당황하게 됩니다
그 이유
아직도 버리지 못한 나의 길이 가슴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정해진 길을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가족의 환경에 따라 직장에 다니고 살아야 했던 과거가 있었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은 마음과 의지만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을 가려면 얼마만큼 부유 해야 했고 부모님의 의지가 필요했습니다
사실 우리 부모님에겐 기가 막히는 길 얼토당토아니한 길이기도 했습니다
나 혼자 갈 수 없는 그 길을 나는
내 맘 속 깊은 곳에 숨겨둔 채 뒤로 미룰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뒤로 미룬 세월은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 버렸고
또 내가 저질러 놓은 책임 또한 거물처럼 나를 옭아매어 놓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멀어지는 길은 더 그립고 아름다운 것일까요
시간이 지난 만큼 그 길을 간다는 것은
잊은 듯 가끔 생각하거나 꿈꾸는 샛길이었고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이 미련의 특성이라면
가지 못한 나의 길이 아마도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패와 성공은 내가 선택한 길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있기 마련일 것입니다
후회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원했던 길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원했던 길을 갔다면 지금처럼 잊고 다시 생각하고 버리고 찾기를
반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이제 그 샛길에 발걸음을 내 딛고 싶습니다
아무 몰래 말입니다
비록 좋은 스승을 만나 배우고 익히는 기회는 잃었지만
나의 의지를 스승으로 삶고 나의 투지를 노력을 삶아
읽고 싶은 책 열심히 읽고 생각 느낌 감정 감성 조율하여
읽고 쓰고 읽고 쓰고 하얀 노트를 메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말입니다
너도 나도 손님
김 익 택
그때는
너도 나도 새벽 손님이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다시는 죽지 않는 불사조처럼
너도 나도 청춘
중국집 조리실 프라이팬 불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삶의 숙제를 던져주었고
그 숙제를 풀기 위해
너도 나도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거친 물살과 가파른 폭포를 뛰어 오르려고
몸부림치다 보니 젊음은 가고
지금은
너도 나도 황혼 손님이 되었습니다
창가에서 지나가는 세월을 보았습니다
김 익 택
차가 지나가고
사람이 지나가고
나무 잎이 흔들리고
구름 그림자가 후딱 지나가는 세월을
나는 보았습니다
모두 나와 무관한 것 같아도
같은 시간의 삶
세월이 구분하지 않듯
나 역시 숨을 쉬는
하나의 자연
더불어 공존하는 삶이므로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세월은
운명을
삶의 몫을 남겨둘 뿐
쉽게 지나가는 하루를
쉽게 잊는 하루를
권리 의무 묻지 않고
책임 추궁하지 않습니다
알게 모르게
있는 듯 없는 듯
그냥 흘러갑니다
언제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삶의 숙제는 바람이
얼굴에 새겨 놓고
양심의 숙제 가치관은
가슴에 새겨 놓고
시나브로 스쳐 지나가듯
홀로 남겨 두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