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에 맘을 싣고



김 익 택

 






 

햇빛 따사로운 날 나는

가을 낙엽에 마음 하나 얹혀 놓는다

 

마로니에 벤치에 앉아 있는

어떤 연인에게는

괜스레 질투도 하고

가끔 노숙자의 가래톳에 침 튀기기도 하는

공원을 어슬렁거리며

그림자를 쫓는 바람이 된다

 

바스락거리는 모래 바닥을 지나갈 때와

까르르 웃음소리를 달고 달음박질 하는

아이 뒤를 따라 갈 때는

토닥거리는 땅의 울림 통이 되고

내일이면 기억 없는 시간일지라도

때 묻지 않는 아이 웃음소리 햇살에 부서질 땐

잠시 늙을 놓기도 한다

 

갈 바람이 좋은 한나절은

병아리처럼 마구 땅을 헤집기도 하고

빈 마당에 홀로 춤을 추는 정신병 환자처럼

구석 진 담 모퉁이에서 회오리를 치다가 

쪼르르 모여 졸기도 한다

 

일상의 삶 모두 밀치고 싶은

비가 내리는 저녁때는

오물을 뒤집어 쓰기도 하지

하지만 비바람에 휩쓸리고

덤프트럭에 깔려 가루가 된다 해도

청소 차량의 음식 찌꺼기와 섞이기 싫고

답답한 마대 속은 싫다

내 위에 또 낙엽이 쌓이고

그 속에 누가 알을 낳고 썩어 흙이 되는

나는 자연이고 싶다

 













낙엽은 바란다 



김 익 택






 

 

이미 생명이 다했다고 함부로 밟지 마라

나는 죽었어도 내 오지랖에는 새 생명이 숨을 쉬고 있나니

봄 바람에 나풀나풀 춤을 추는 제비나비 너의 발자국으로 인해

볼 수 없을지도 모르나니

정담을 나누는 연인의 미소처럼

사랑만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새 생명은 한결 더 부드럽거늘

낙엽 밟는 소리가 아름답다고 죽음의 소리까지 아름다운 것이 아니리라

걸을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밟을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자이나교 스님의 발자국처럼

너의 발걸음도 가벼이 걸어 가다오

살아서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썩어서 아름다운 것이 있는 법

할 수 없이 나를 밟고 가야 한다면 마구 뛰지는 말아다오

비록 힘이 없어서 이리 저리 바람에 몸을 맡긴 처지이지만

소리의 운치와 공간의 허무를

시각의 미학과 향기의 순수를

정서가 메마른 너의 빈 가슴에 채우느니

나는 오늘도 꿈꾸느니

자연의 품으로 돌아 갈 수 없다면

어느 여인의 일기에 한 줄의 시가 되고 싶고

고독한 청년의 책 갈피 속의 누드가 되고 싶다




 









침엽수가 전하는 얘기



김 익 택


 



사랑만 있다면

어디 있는 들 어떻겠냐

꽃피고

숲 우거지고

단풍 들고

헐 벗는 것 마찬가지 일 텐데

 

하루에 한번은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

마찬가지 일 텐데

아니 가끔 관심이라도 가져주면 되지

겨울 정오의 햇빛처럼


기피증

실어증

그런것 모른다

아니 그것 다

사랑할 수 없을지라도 보듬고 가야 할 삶이다

 

시련 뒤 희망 오듯

준비하는 네 등 뒤에

형제가 없고 친구가 없더라도

언제나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연이 있다

 












낙엽 1



김 익 택

 




 

 

저 낙엽은

추억의 의미만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 새로운 잉태를 하기 위한 결실이구나

그러므로 녹색이 노랑 빨강으로 물들고

까맣게 또는 하얗게 퇴색 되어

마침내 한 점의 물기까지 말라 바스러질 때

가엾게 여기지 마라

서러워 마라

나는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한 줌의 흙으로 돌아 갈 뿐이다

삶은 언제나 새로운 곳으로 흘러가는 것

아름다운 것도 잠깐이고 지루한 것도 잠깐이다

오늘이 과거가 되고 과거가 다시 미래로 되돌아가는 것은

자연의 순리

떨어진 낙엽은 새로운 삶의 자양분이 되어 돌아갈 뿐이다

순환의 고리는 새로운 삶을 영속을 위한 것

세상의 식물 모두 일년 내내 매양 푸르게 산다면

그것도 결코 아름답지 않으리

한 잎 낙엽이 썩는다는 것은

나를 위하고 너를 위한 새로운 삶이며

새로운 두 잎의 푸름을 보기 위한 준비임을

나도 알고 너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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