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압지 밤 설경
김 익 택
네가 아름다운 것은
칼 바람 용해하고
구름 비 이해하는
시간의 굴레에
묵묵히 입을 다문
인내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추우면 춥다 하고
더우면 덥다 하는
아이 같이
비바람 앞에 무릎 꿇은
시간의 잔해로 남은 실체일 뿐
고관 대작
거문고 타고
시 읊던 정자의 음률
사라진 천 년은
잃어버린 제국의 꿈
슬픈 유산으로 남겨두고
지금은 너도 나도 주인
LED 조명으로 치장한 정자
옛 시대 단면을
보고 있는 것인 양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줄 지어 구경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름답다며
문명이기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 바쁘다
몽상
김 익 택
잠 못 이루는
깊은 밤
꿈은 여물어도
몸을 뒤척이며
어둠 속에 그려보는
보물상자
하고 싶고
갖고 싶고
도와주고 베풀고
인심 양심 거리낄 것 없이
세상에 다시없는
나눔의 기부천사가 되어도
모자라 속 시원치 않다
가로등불이 꺼지고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한숨
지난밤의 선행이
와르르 무너지는
빛 밝은 아침
눈꺼풀이 따갑다
별
김 익 택
흔들리는 바람에도
감정이 느껴지는
가을 낙엽도 아니고
마음을 흔들어 놓을 만큼 아름다운
저녁 노을도 아니고
벅차게 떠오르는 환희의
아침 태양도 아닌
세상이 모두 차가운 겨울 밤
문득
고개 들어 보면
보석같이 반짝이는
수 맑은 별이
가슴에 쏟아지는 날이면
얼어붙은
바위와 다름없는 것이
저 밑 말초신경부터 심장까지
감정선이 들고 일어나
마구 흔들어 놓을 때가 있지
그땐 감동에 취한 나머지
자연과 하나되는 것인지
마음이 분열되는 것인지 모르지
별빛이 차갑고
바람이 차갑고
온 몸 덜덜 떨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주체할 수 없는
그 무엇에 울컥거려
슬프지 않는데
눈물이 날 때가 있지
슬픈 12월 밤
김 익 택
12월의 깊은 밤
오지 않는 님
붙잡지 못해 안달하는
우울이 추억을 붙잡았지요
마음은 언제나
팥죽처럼
붉은 사랑이 넘쳐 흘러도
줄 곳 없어
꿈길에서 님을 찾아 다녔지요
그렇게 안타깝고 아쉬웠던
어린 날은
세월이 앗아가고
오늘 12월 깊은 밤
설렘은 어디 가고
소식 모르는 옛 동무같이 우울합니다
눈발 내리는 날에
김 익 택
매화 꽃잎에 쌓인
눈꽃은
새색시 수줍음같이
상큼하고 풋풋하다
노송 잎에 쌓인
눈 꽃은
이웃집 웃음소리같이
탐스럽고 믿음직하다
대나무 잎에 쌓인
눈 꽃은
아가의 미소같이
활기차고 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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