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만장대 분산성



고려 우왕 3년(1377년) 박 위 부사가 왜구를 막기 위해 축성한 뒤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던 것을 고종 8년(1871년) 정현석 부사가 개축한 것이다. 그러나 성의 기초 선정방법이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소위 테뫼식을 따르고 있음을 볼 때 최초 축성연대는 가야시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성곽의 길이는 총 929m, 평균 폭은 약 8m이다. 현재 남북의 2개 문지와 서편의 암문, 우물지 등이 남아 있으며, 97년 복원된 봉수대가 있다.


분성산은 경남 김해시 북부(北部), 삼안(三安), 활천(活川) 3개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서쪽 사면에서는 해반천(海畔川)의 지류가 발원하고 동쪽 사면에서는 신어천(神魚川)의 지류가 발원한다. 또한 산의 남쪽 산중턱에 분산성(盆山城), 수로왕비릉(首露王妃陵), 해은사(海恩寺), 금성사(金城寺), 성조암(聖祖庵) 등이 있으며, 남쪽 기슭에 시가지가 전개되어 있다


김해 중심부의 이 산에는 가야 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분산성이 위치하며 분산성은 사적 제66호. 산성주위 둘레 약 900m. 산꼭대기에 있는 평탄한 지형을 둘러서 그 주위에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룬 성벽으로, 수직에 가까운 석벽은 높이가 약 3~4m인데 무너진 부분이 적지 않다. 이곳에 세워진 ‘정국군박공위축성사적비'에 의하면, 이 산성은 조선 초기에 박위가 고산성(古山城)에 의거하여 수축한 뒤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871년(고종 8) 다시 현재의 성벽으로 고쳤다고 한다. 성기(城基)의 선정법은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룬 테뫼식[鉢卷式]을 따른 점으로 미루어 그 시축(始築) 연대가 삼국시대임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산성 서쪽의 삼산리(三山里)에 있는 고분군의 유적으로 보아, 가야의 중심 근거지를 이룬 산성으로 짐작 된다. 허왕후와 장유화상이 가락국으로 건너와 창건한 해은사, 흥선대원군 만세불망비 등을 모신 충의각, 그리고 분성산 봉수대 등이 산자락 곳곳에 있어 가야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산 정상에 김해천문대가 위치하여 김해시민뿐만 아니라 타 지역민의 명소가 되고 있다.

봉수대에선 김해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시가지는 물론 김해평야 남해고속도로 서낙동강과 부산까지 바라볼 수 있다. 해은사(海恩寺)도 연이어 나타난다. 지금은 범어사의 말사인 조그만 해은사는 허 왕후와 장유화상이 가락국에 무사히 도착한 후 풍랑을 막아준 바다의 은혜에 감사의 의미로 지은 사찰이며, 영산전 옆 대왕각에는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해은사 입구에서 우측으로 열린 산길로 내려서면 얼마 가지 않아 분산성을 만난다. 가야 때 축성된 이 성은 고려 말 당시 김해부사 박위가 왜구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재 축성했다. 시내 쪽 경사면에 현재 900m가량의 성벽이 남아있고 높이는 3~4m에 달한다. 산성마을 왼쪽은 경사가 아주 심한 봉수대 오르는 길이며, 10분쯤 땀을 흘리면 마침내 분산성 봉수대에 닿는다.


참고문헌

김해 문화관광 http://tour.gimha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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