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동할미 바람이 매화가지를 울리고
김익택
어둠을 가로 지르는
동동할미 바람
매화 눈을 두드리는 밤
별빛은 따뜻한데 바람은 차다
언제 바람이 양심이 있었던가
칼바람속에
봄 바람이 있어도
들춰내지 않는 것이
바람의 의무
참고 견디는 것도 삶의 몫이라고
언제 얼굴을 들어낼까
궁금하지 말라고
구름에 가린 초승달이 웃는다


설중매화 생각
김익택
지난밤은 잘 잤는가
인사가 무색할 만큼
비바람 불고 추웠는데
네가 피운 꽃 위에
하얀 눈을 생각하면
너에게 아픔이
나에게는 행복
마음가진 사람 할 짓 아니지만
상상에서 설중매가 울어도
내 설레는 맘은
어쩔 수 없다
앞선 시대의 아픔 같이
고귀한 풍경은
으레 아픔을 동반하는 법이라고
너의 위안 아닌
내 위안에 욕심을 내 본다


봄의 신호탄 매화
김익택
시간가면 당연히 오는 봄을
참지 못하고
내 마음의 오롯이 피는
매화가 그리워
여린 가지를 바라본다
겨울 추위는 그에게도 악몽일까
아무리 정신승리해도
매화 꽃 몽우리는 보이지 않고
야윈 가지는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다
겨울 추위가 오늘 하루가 아닌
매년 겪는 계절이지만
겨울은 시험 아닌 삶의 실험
매년 독감에 걸려 앓는
감기몸살 다름아니다
매화가 피면 산하가 아무리 앙상해도
희망의 신호탄
단한번도 소홀하지 않던 겨울은
봄 바람에 얼음은 눈물방울처럼 떨어진다


매화를 읽는 진심
김익택
살을 에이는 겨울 추위를
수련과 단련을 삼았으니
그 가지에 피는
꽃의 미학과 향기도 그와 같았으리라
그 꽃이 산다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아는
삶의 의무가
희망이었음을 알았기 때문
탁하고 어지러운 세월
그 꽃의 진심처럼
몸가지고 마음가진 사람들도
그 꽃만큼
학식도 덕망도 그만큼 했으면
일찍이 이퇴계님처럼
인간이 그 꽃을 존경할 땐
희망과 사랑을
그 꽃에서 찾았기 때문이리라


매화는 이팔청춘
김익택
네 얼굴이 하도 맑고 밝아서
아무리 요모조모 살펴봐도
시련이 있었던가 고통이 있었던가
꽃에선 찾을 수 없어도
늙은 몸은 내일 죽어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난 모진 추위는 단순한 기우 아니었고
겨울을 가로질러 봄이 온 것 아니었음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몸이 지치고 쇠약하면
마음도 따라가기 마련인 것이 자연의 이치
백세 노인과 다름없는 그가 피운 꽃은
이팔청춘같이
하나같이 싱싱했고 향기는 풋풋하다


매화와 꿀벌과 나
노래를 불러주면 알까
조용히 꽃술에 입을 대고
속삭이면 알아 들을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방법을 몰라
빤히 쳐다보기를 10여분
꽃술에 자유롭게 드나드는
꿀벌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렸다


매화의 깊은 미학
김익택
없는 눈물 쥐어짜며 배꼽 잡고
더 웃고 싶어도 더 웃을 수 없어
바닥에 때국때굴 구르게 하는
극도의 희열 아니지만
사색과 사고로 극복할 수 없는
깊은 고민
있는듯 없는 듯
사라지게 하는 너의 미소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두고두고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 너의 향기는
무슨 해명이 필요할까
순간순간 숨을 쉬는 삶 아니어도
너의 곱고 신선한 자태에
오감을 가진 사람들
정신과 영혼의 그만한 위로가 없다


매화 꽃 몽우리
김익택
멀리서 보면
여타 나뭇가지와 다르지 않는
가지 같지만
자세히 보면 여린 가지마다
촘촘히 달라붙은
꽃 몽우리는
부끄러워 샐쭉 내민
새색시 분홍 입술같이
웃으면 더 예쁘고
수줍어 해도 예쁘다


매화 너는 백년 삶이 본받아야 할 덕목
김익택
세월에 몸은 곰삭아도
피는 꽃은
백년
세월에도
더 신선하고
향기는 더 그윽하니
백년
사는 사람이
본받아야 할 덕목
너 밖에 또 있을까 싶다

매화가 알려준 삶의 덕목
김익택
그분이 친구같이 애인같이
아끼고 사랑하고 존경한 이유를
이제 조금 알겠어
삶이란 사랑이란 진실부터
시작하고 진실로 끝난다는 것을
사람이 두고두고 실천해야 할 일은
근면성실
덕망과 명예는
나를 낮추어 너를 높이는 일
나를 위한 너의 일이고
너를 위한 나의 일이라는 것을
존재의 가치는 사랑이 근본이고
사랑의 근본은 관심이며 이해라는 것을
그 실천은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내가 달다는 것을 알려준
매화였다는 것을


매화를 바라보며
김익택
매화가 입이 있어 자랑한적 있었던가
악착같이 살려고 몸서리치도록
자기 삶에 성실했을 뿐
한갓 꽃이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사랑은 쉽게 받을 수 있어도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도 어려운 법
관심이 있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끼는 것은
자연이 삶에게 지혜를 부여할지라도
매화가 꽃을 피울 때까지 환경을
가슴에 새기면
사랑이 되고 존경이 되는 것은
그 근본이 자기 사랑 아닐까 싶다


매화 피는 희망
김익택
한파가 그를 독하게 만들었나요
그의 푸석한 몸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몸통은 썩어 서 있는 것이 기이하고
가지는 말라비틀어진 삭정이 다름없습니다
그 가지에 아이미소 같은 꽃이 피고
아이웃음소리 같은 향기를 피운다면
이율배반도 그런 이율배반은 없는 것이지요
과정이 꼭 힘들어야 결과가
꼭 좋은 법은 아니지만 그가 피는 계절은
만물의 영장 사람도 회피하는 추위지요
오늘같이 추운 밤
그를 생각나고 생각하는 건
아파도 생명이 붙어 있는 한
꽃을 피우는 믿음 때문이겠지요
곧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썩은 나무 가지 끝에 피우는 희망 말입니다

기쁨의 선물을 나눠주는 매화
김익택
막을 수 없는 대세가 아니라
막을 수 없는 대세에서도
촛불이 횃불이 되는 꽃이여
너는 너 자신을 태우지 않아도
전사가 되고 폭약이 되네
너를 찾아오는 삶들 모두에게
아무리 베풀어도 모자람 없는
기쁨의 선물을 나누어 주고 있네


매화의 인지상정
김익택
거짓은 성질이 급하고 진실은 시간이 필요하죠
제 삶에 충실하다 보면
믿음도 얻고 사랑도 얻는 것이지요
유혹 그런 것 몰라요
내가 미소를 띄우니 상대도 웃고
내가 인사를 건네니까 상대도 인사를 하드라고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간단하게 생각해요
내가 좋아야 상대에게 보이는 나도
상대에게 좋게 보이는 법
구태여 내 고통을 상대에게 알릴 필요 없잖아요
시간이 흐르다 보면 자연적으로
상대가 내 사정을 더 잘 알더라고요
내가 먼저 인사를 해서 상대가 즐겁다면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은 것이지요
인지상정이라는 말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걸 보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지요


매화는 침묵의 스승
김익택
정신나간 사람 집으로 불러들이는 사람
부모밖에 더 있을까
저 꽃이 피는 것도 추위에 얼어붙은 맘
불러들여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독거리는 것이지
모름지기 삶은
자신보다 어려운 삶들이 극복했을 때
자극을 받기 마련
하물며 겨울을 이겨낸 늙은 나무가
젊은 꽃을 피우니
양심이 가슴을 치는 것이지
세상에 제일 좋은 스승은 스스로 깨닫는 것이지
묻지도 않고 꾸짖지도 않고 조용히


매화도 사람의 본심을 읽었을까
김익택
어지러운 정치싸움에 매화도 걱정이 되었을까
설날이면 축하 메시지같이
피기 시작하든 꽃이
올해는 설날연휴가 다 지나가도
움조차 보이지 않았다
삶이 불안하면 꽃도 보기 싫고 향기도 귀찮은
관심밖의 일
그것 알지만
잘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위로는 또한
오지랖 넓은 일
세상이 바뀌어도 시간이 바뀌는 건 아니고
사람들이 바뀌어도
꽃이 바뀌는 것 아니지만
밝은 얼굴로 맞이하는 것과
우울한 얼굴로 맞이하는 것은 천양지차
매화도 사람의 본심을 읽었을까


내가 매화가 보고싶은 이유
김익택
석별의 정 노래를 부르는
최보윤 목소리에 녹아 내리는
눈꽃의 눈물이
내 가슴에 흘러내린다
기다리면 당연히 필 매화를
피지도 않는
향기를 기다리는 건
어리석음을 알면서
도둑바람에게 봄을 묻는 것은
봄을 알리는
매화가 보고 싶은 것이다

매화가 핀다고 완전한 봄 아닙니다
김익택
이 땅에 오는 봄은
매화가 꽃피우고
새싹이 움 틔우는 것만으로
봄 아닙니다
남의 자유를 억압하고
나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매화가 핀다고
남의 의심이 해소되는 것 아닙니다
삶의 진리를 거부하고
자연의 진리를 거부하는 그들의
정신을 박살내는
총알이 되어야 완전한 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