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정의 소박한 평온함

김익택 

 

 

승용차가 겨우 올라 갈 수 있는

가파른 오르막길 20여미터

평평한 그곳에 도착하면

노 거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반긴다

 

그곳 오연정은 밖에서 보면

어느 가정집 다르지 않지만

대문을 열고 들어 가

뒤간 소문을 열고 들어서면

앞에는 벼랑 뒤 평지

숲으로 둘러싼 오연정은

소박하면서 포근하다 

 

정자 양쪽 배롱나무는

정자를 가릴 만큼 무성하고

넓은 마당 앞 돌담 너머 푸른 노송은

장군의 기상이다

뒤간 뜰에 단풍나무 한거루는

공작이 날개를 활짝 펼친 듯

우아하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정자에 앉아 있으면

내가 암탉의 품속에 있는듯 평온하다

밀양강 솔 숲이 그림같이 정겹고

솔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가슴까지 시원하다

오연정에 눈이 내리면 01

김익택

 

 

수수했던 숙녀가 백옥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모습이 이럴까

하얀 눈 덮인 오연정은

눈에 익었지만 전혀 다른 모습이다

 

오래된 기와지붕에 쌓인 눈

느티나무 가지에 쌓인 눈

노송의 푸른 솔잎에 쌓인 눈

담장 기왓장에 쌓인 눈은

 

향기도 없고 색도 없다 속도 겉도 하얗다

생명도 없고 유혹도 없다

그렇지만 아름답다

예전과 다른 다정을 품고 서정을 품었다

오연정에 눈이 내리면 02

김익택

 

 

오연정에 눈 내리면

누구나 그곳

누마루에 앉아 있으면

한 폭의 그림

노인이 앉아 있으면

도인이 되고

숙녀가 앉아 있으면

선녀가 된다

 

오연정에 눈 내리면

내 마음은 벌써

그곳 누마루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선인이 되고

시를 읊고 있는

자연이 되고

가야금을 타고 있는

악인이 된다

비 오고 눈 녹는 풍경을 담으며

김익택

 

 

저 푸른 동백 잎에 쌓인 눈에

동백꽃이 피었으면

하양과 붉은 조화가

얼마나 아름다울까

 

저 검은 가지에 쌓인 눈에

매화까지 피었으면

하양과 분홍 조화가

얼마나 고혹적일까

 

눈이 좀더 많이 내렸으면

비가 내리지 말았으면

내린 눈이 녹지 말았으면

한시간 만이라도

이대로 유지해 주었으면

 

오지 않는 남녘 땅에

눈이 내린 것만으로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갈증 해갈이 욕심을 부린다

늙은이가 지키는 마을

김익택

 

 

산 좋고 물 좋은 곳 강산에

알을 품고 있는 검은 두루미처럼

고고해도

생활하기 불편하면 외면하기 마련

그 옛날에 최상의 보금자리가

전자 밥통 식기 세척기 자동 난방

삶이 윤택하고 편리한 시대

선진 기술과 개인주의 밀린

정신적 모럴 유교를 보는 듯

불편한 유물이 될 줄은 몰랐지요

도심과 먼 시골은

주인이 없어 찾아오는 사람 없는

마을의 집들은

한 걸음이 천리같이

골다공증에 걸린 노인 마냥

모레면 무너질까 내일이면 무너질까

아슬아슬하다

 

 

 

오연정의 작은 미학

 김익택

 

 

숲 속에 자리잡아

보이지 않는 오연정은

아담하고 소담스러워

한번쯤은 살고 싶은

탐나는 집이다

봄엔 분홍 겹벚꽃이

여름엔 붉은 배롱꽃이

가을엔 노란 은행과

붉은 단풍이

겨울엔 새하얀 눈꽃이

꿈같이 아름답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명소는 아니지만

그 어느 곳과 비길 수 없는

아담한 숲속 비밀정원이다

오연정의 매력

김익택

 

 

사람 살지 않아도 옛 삶이 그립고

학문이 그리운 사람들이 찾아오면

아쉬워하며 돌아갈까

그 마음 읽어

일년 내내

대문을 열어 놓은 오연정은

그 옛날 주인장 덕망답다

돌아보는 곳곳마다 낡고 닳은 흔적

보존이 아쉽지만

그래도 봄이 오고 싶고

여름이 오면 오고 싶고

가을에 또 오고 싶고

눈 오는 겨울엔 무조건 와야지

단념 할 수 없다

참 예쁘다 참 아늑하다 라는 생각

지울 수 없다

봄 그리고 기다림

김익택

 

 

음악으로 위로될 수 없는

내마음의 추위는

꽃 바람이 불면 해소가 될까

 

기러기가 추위를 물고 가고

휘파람새가 봄을 물고 오는

소식은 감감무소식

 

찬바람이 우는 가로수를 바라보다

흰 구름속에 너머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매화를 기다리는 마음

김익택

 

 

이 비가 오면 매화도 꽃을 피우겠지요

겨울비가 봄비처럼 포근합니다

그 기회는 알게 모르게 조용히 오고

어렵게 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 기회를 잡는 법은

준비하고 기다리는 자의 몫이고요

보채고 채근하는 것 아닙니다

성급하다고 해도 조급증 환자 아닙니다

 

공갈 아니고 협박 아니고

보고 싶은 간절한 기다림입니다

왜냐구요 예년이면 알렸던 꽃소식을

아직 기척이 없기 때문입니다

 

2월1일 이 비 그치고 나면

분명 봄 소식으로 알리겠지요

삶은 혼자가 아니었음은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하겠지요

꽃과 사람사이

김익택

 

 

내 살기위해 피는 것이지

억지로 피우는 건 아니지요

이왕 피는 꽃이라면

웃으며 피우는 것이지요

 

세상에 인상을 쓰며

피는 꽃이 있었던가요

예쁘고 아름다운

향기까지 가졌다면

피는 꽃도 행복한 일이지만

보고 즐기는 삶도 행운이지요

 

꽃과 사람 사람과 꽃들은

좋은 것이 좋은 법이지요

날씨 기온까지 갖추었다면

대박 아닙니까

기와 집 그 집

김익택

 

 

그 옛날 부를 품고 명예를 품은

문턱이 달았을

아흔 아홉 칸

기와집 그 집

문화재라는

영예는 얻었을 지라도 삶을 잃었다

 

그 옛날 학식과 덕망을 품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고래등 같은

지금 기와 집 그 집

서원이라는

명예는 얻었을지라도 학문을 잃었다

 

지금 사람이 살지 않는 그 집은

24시 감시카메라가 지키고 있고

큰 대문에

자물통이 채워져 있는

기와집 그 집

간간히 찾아오는 사람들 발길을 돌리고 있다

피는 꽃의 희망

김익택

 

 

생각만으로 배꼽 잡을 만큼

기쁜 상상화는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노력만 믿었습니다

 

늙지 않는 세월을

한때는 착각하고 살았지만

가고 오는 세월같이 마냥

무심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비바람 불고 눈보라가 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도

배움이었고 가르침이었습니다

 

시작은 어려워도 끝은 희망임을

매화가 피고 동백이 피는 것도

시작은 외로웠지만

끝맺음은 아름다움이었음을

매화 네가 필때까지 기다릴께

김익택

 

 

내일 아침 날씨 영하 12도

보채는 내 말 믿고 피었으면

모두 얼어 죽었을 터

그래 네가 피지 않았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지

그것도 모르고

왜 안 피냐 고 다그쳤으니

얼마나 화가 났을까

미안해 미안해

네가 필때까지 기다릴께

오래 기다려봐야 보름

몇일 더 일찍 핀다고

세상 바뀌는 것 아니지

그래 그래

너도 웃고 나도 웃고

벌 나비도 웃는

하늘 맑고 빛 좋은 날 우리 만나세

그 어디서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김익택

 

 

그 어디서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무작정 마음이 가는 대로 길을 나섰지

어디가면 있을까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주소도 모르는 사람

미친 사람처럼 보이겠지

그래도 괜찮아 편한대로 생각해

아픔도 슬픔도 외로움도 나의 몫

먹고 잠을 자는 거 구걸하지 않으니까

두려울 게 없지

불어오는 바람도 내 친구 내리는 비도 친구

나는 내 멋에 사는 자유방임 노스탤지어

존중은 바라지 않지만 관심도 싫고

방해는 금물이야

아쉬운 것 있다면 남들이 쉽게 하는 사랑을

가슴 저리도록 그리워했지만

단한번도 못해 본 사랑

남기고 싶은 있다면 바람 같고 비 같은 한편의 시

그리고 욕심 하나 더 있다면 길을 가다 우연히

사과처럼 시원한 사람 만나는 것

아니면 나 같은 사람 만나면 좋겠어

처음 만났지만 서로서로 바라보며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거지같아 웃고 바보 같아 웃는 그래

그것 또한 꿈이라는 걸

여행이라는 그런 것이고 꿈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

착각해도 좋고 행운을 만나면 더 좋은

지독하게 지겨운 그때 외로운 그때

내 여행은 마지막이겠지

매화 꽃몽우리에 맺힌 빗방울을 바라보며

김익택

 

 

인생의 꽃 길이 정해져 있던가

 

청춘의 꽃 길은 있어도 몰랐고

늙어서 안 정신적인 꽃 길은

건강이 여유를 따라주지 않아

 

인생 꽃 길은 그림 속 풍경 아니던가

슬픔이 사랑을 일으켜 세우는 힘

김익택

 

 

한치 앞이 보이지 않도록 눈물이 흐르고 흘러

가슴을 후벼 파는 슬픔도 아름다울 때가 있죠

모든 삶을 포기한 것같이 두 눈이 퉁퉁부어 올라

한치의 앞이 안 보일지라도 사랑은 슬픔과 기쁨

서러워도 부끄럽지 않고 속이 시원할 때가 있죠

 

알고 보면 슬픔이 사랑을 일으켜 세우는 힘은

너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는 마음의 촛불이며 등불

슬픔은 순간적으로 오고 가는 순풍이며 보슬비

내 그릇에 담아 보듬어서 삭히면 보석이 되고

버리면 추억은 남아도 다시없는 아쉬움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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