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사 배롱나무에 핀 연꽃
김 익 택
만연사 대웅전 앞
배롱나무에
붉게 핀 연꽃은
진통 끝에 들려오는
아이 울음같이
겨울의 탄성이다
가지 끝 울리는
매서운 눈보라도
연꽃 위에 앉으면
순결같이 고운 눈
눈밝은 삶들
환희 밝혀주는 것도
모자라서
새하얀 흰 꽃으로
다시 피어서
눈 맑은 삶들
사랑이 무엇이며
믿음이 무엇인지
새 희망의 매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만연사 배롱나무 연등
김익 택
만연사 배롱나무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름다운 여인의 나신 같이
그 자체가 미학이다
눈 내리는
한 겨울
매끄러운 가지마다
쌓이는 눈은
꽃보다 순결하고
가지에 매달린
붉은 연등에 쌓인
하얀 눈은
너무 해맑아
만지면 부서질까 때 묻을까
고결하다 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저기 내 사랑이
김 익 택
저기
내 사랑이 바람 타고 오네요
꽃보다 아름다운 미소 띄우며
저기
내 사랑이 빛을 타고 오네요
향기를 흩날리며
저기
내 사랑이 별빛 타고 오네요
알아도 모르고 몰라도 아는
조용하고 고요하게
저기
내 사랑이 오고 있네요
언제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게
내 모르는 사이
김 익 택
내 모르는 사이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
잠은 자도 세포는 죽고
세포는 죽어도 일은 한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내가 성장하듯이
그래 싫어도
겪어야 생활이라면
잘 살고 사랑하고 살아야지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된다
고집이 나를 돌아보게 하고
아집이 생각을 가로 막으니까
내 편안한대로
그렇게 오늘 하루도
지나고 나면
반성이라는 단어에
스스로 면죄를 받으며
만연사 겨울 풍경
김 익 택
만연사 겨울 풍경은
일 년 묵은 때를
흰 눈으로 씻어준다
지독하고
지긋지긋하게 따라 다니는
온갖 삶의 시련은
눈바람으로 씻어주고
살아도 늘 불안한 삶은
안정 인내하라고
소복하게 쌓이는 눈의 심장같이
차갑고 냉정하게
옳고 그름을 가려쳐준다
그래서 내 안에 쌓여있는
고름 같은 아픔 나도 모르게
눈 녹듯 치유가 된다
기다린 자의 몫
김 익 택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에
설레는 것은
사람보다 꽃이 먼저
깊은 계곡 낙엽 속에
분홍 노루귀도 있고
대가집 안마당 매화도 있다
바람은 바람이어도
이빨바진 호랑이
자연의 섭리는
아름다운 약속이다
만년사 눈쌓인 연꽃
김 익 택
하양 모자 눌러쓴
살가운 아가같이
하얀눈 덮고도
붉게 피는 걸 보면
어느 비구스님
부모형제 등지고
집 나설 때
머리일까 가슴일까
저리도
새하얗고 붉은 것을 보면
눈은 내리고
김 익 택
하늘에서 자꾸자꾸
마음을 하얗게
밝고 깨끗하게 하라고
밤새 내려
온 세상 하얗게
잊고 잃어버리는
하얀 밤이 되도록
새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나는
좋아서 기뻐서
내 안에 아픈 상심
하얗게 해달라고 질문을 던지는데
사랑이라 해도 좋고
기쁨이라 해도 좋고
네가 알아서 하라는 듯
하얀 눈은 자꾸자꾸 내려
쌓이기만 할뿐
폭설
김 익 택
입 속에서
마구 휘날리는 눈발
엉덩이 부여잡고
황급히 똥간 가듯
산 바다 가리지 않고
마구 쏟아지고 있네요
소나무가 고개를 숙이고
대나무가 허리를 숙이네요
사람들은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차들이 도로에서 주춤거리네요
눈 덮인 넝쿨 속에 들어가
먹이를 찾고
개들이 거리를 활보를 하고 있네요
눈길을 걸으면
김 익 택
눈에 익었지만
황홀한 딴 세상
저기 언덕에 노송 한 그루
저기 구릉지에 외딴집
저기 빈 들판 한가운데 묘지 한 쌍
어느 화가 꿈에서 본 풍경을
그린 것일까
맑고 밝은 그 위를
걸어가는 내가
미안하다
아깝다
꿈속에서
김 익 택
걸어가는 데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네요
생머리였던가요
웨이브 머리였던가요
고개를 돌리는데
사갈 그림 속이었던가요
뭉크 그림 속였던가요
섬뜩하네요
허리에 찬 총을 찬 경찰이
달려 오네요
아무리 달려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도망갈 수 없네요
설국은 천국
김 익 택
살면서 저도 몰래
온몸 전율을 일으키는 풍경
몇 번을 볼 수 있을까
너무나 눈 부시어서
눈 감으면
나보다 너를 생각하고
내가 모르는 나의 죄를
생각하게 하는 풍경
몇 번 있을까
삶의 본질
삶의 도의
철학보다 깊고
삶의 가치
절로 느끼게 하는
대자연의 풍경 위대함
몇 번 있을까
나를 있게 해준 부모
나를 일깨워 준 스승
나를 키워 준 대자연
거듭거듭 고마운 일
몇 번 볼 수 있을까
한 파
김 익 택
고삐를 쥔 한파가
바람을 채찍 하는가
베라다가 울리고
가로수가 울리고
자동차를 울리더니
마침내
더는 울지 말고
눈물 흘리지 말라고
수도 꼭지를
꽁꽁 얼어 붙였다
눈은 나그네
김 익 택
저기 바람맞는 소나무 허리
저기 바람맞는 대나무 잎
저기 바람맞는 배나무 가지에
배고프면 먹으라고
하늘에서
고봉 쌀밥 얹어 놓고 가네
저기 화단 향나무에
아이가 좋아하는 생크림같이
저기 장독대에
엄마가 좋아하는 영양크림같이
살포시 얹어 두고 가네
주고도 받는 것 없이
어릿광대 춤사위같이
소리 없이 한바탕 놀다가
사뿐이 달려가네
사랑하니까
김 익 택
사랑하니까
미움도 있고
야속함도 있고
그리움도 있는 것이겠지요
암 그럼요
사랑하니까
이해도 하고
화해도 하고
용서도 하는 것이지요
그렇고 말고요
사랑하니까
만나면 즐겁고 헤어지면 섭섭한 것이겠지요
맨날 좋을 수야 없는 것이지요
살다 보면
이별도 하고 고별도 하는 것이지요
사랑하지 않으면
아이가 태어나고
노인이 죽어도
길 건너개 짓는 소리
이웃사촌이 없는 것이지요
한잔의 커피를 천천히 마시는 것은
김 익 택
한잔의 커피를
천천히 마시는 것은
양이 많아서 아니고
아까워서 아껴 먹는 것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지요
향기는 정성으로
음미는 믿음으로
대화는 가슴으로
마음과 마음의 소통하는
공감이지요
한잔의 커피를
천천히 마시는 것은
시간이 많아서 아니고
배가 불러서 아닙니다
생각 없는 가운데서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는 것이고
숨가쁘게 달려오느라 피곤한 나를
공간의 내려놓는 것이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사색하는 것이지요
만연사
萬淵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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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만연산은 나한산(羅漢山)이라고도 한다. 1208년(희종 4)에 선사 만연(萬淵)이 창건하였다.
만연은 광주 무등산의 원효사(元曉寺)에서 수도를 마치고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오다가 지금의 만연사 나한전(羅漢殿)이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잠시 쉬다가 잠이 들었다.
십육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실 역사(役事)를 하고 있는 꿈을 꾸고 주위를 둘러보니 눈이 내려 온 누리를 덮고 있었는데, 그가 누웠던 자리 주변만은 눈이 녹아 김이 나고 있는 것을 보고 경이롭게 생각하여 토굴을 짓고 수도하다가 만연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쳐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사리각(舍利閣)을 비롯하여 대웅전·시왕전(十王殿)·나한전과 승당(僧堂)·선당(禪堂)·동산실(東山室)·서상실(西上室)·동별실(東別室)·서별실(西別室)·수정료(守靜寮)·송월료(送月寮) 등의 3전8방(三殿八房)과 대웅전 앞에 규모가 큰 설루(說樓), 설루 아래에 사왕문(四王門)과 삼청각(三淸閣)이 있던 대찰이었다. 또한, 부속 암자로는 학당암(學堂庵)·침계암(枕溪庵)·동림암(東林庵)·연혈암(燕穴庵)이 있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는 만연사 승려들이 군중일지(軍中日誌)에 필요한 종이 및 주식·부식 등을 조달해 외적 방어에 도움을 주었다.
1793년(정조 17) 화재로 진언집(眞言集) 판각이 타버리는 등 피해가 있었으나 이듬해 경관(慶冠)이 중건하였다. 한말에는 당시 국창(國唱)으로 불리던 이동백·이날치 명창이 만연사에서 소리를 닦았으며, 정광수·임방울 등 당대의 명창들도 이곳에서 창악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6·25전쟁 때 모든 건물들이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978년부터 4년에 걸쳐 주지 철안(澈眼)이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나한전·명부전(冥府殿)·한산전(寒山殿)과 요사채가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선정암(禪定庵)과 성주암(聖住庵)이 있다. 유물로는 고려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향나무 원목의 삼존불과 시왕상(十王像)·십육나한상 등의 불상과 비현(丕賢) 금어(金魚)의 작품이라 전하는 세로 760㎝, 가로 586㎝의 괘불(掛佛),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범종(梵鐘) 등이 있다. 또 이 절 경내에는 둘레 3m, 높이 27m, 수령 770여 년의 전나무가 있는데, 만연사 창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심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