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와 비
김 익 택
저 붉은
꽃잎에 맺힌 빗방울
울어서 풀린 슬픔의 화신인가
슬퍼서 흘린 눈물의 증표인가
그에게 7월 장마는
삶의 시험이며 아픔인데
내 눈에 비친 풍경
맑아서 보석 같고 깨끗해서 순수하다
능소화의 호기심
김 익 택
초복 중복 말복
삼복 더위에
담장에서
그네를 타고 있다
사랑도 시샘도
내가 받아야 신나는 법
붉은 태양보다 짙은 얼굴로
나를 보라고
향수 흩날리며
가는 시선
오는 시선
죄다 받으려고
목을 고추세우고 있다
오는 비
김 익 택
당신 이름이
어느 해는 축복이었고
어느 해는 재앙이었던 가요
당신을 기다리는
뭇 생명들
당신이 오실 때
울고 웃어요
맑고 밝고 투명한 당신
무한한 능력
무한한 사랑
꽃동산의 된서리
사막의 오아시스
부족해도 넘쳐나도
이땅의 삶들은
울고 웃습니다
오는 비에
김 익 택
노심초사
기다림을
삭이고 참는 사이
네 얼굴이
저렇게
붉어진 것일까
비를 맞고 웃는 능소화
김 익 택
그대 고운 얼굴에
마구 흩뿌리는 빗줄기에
흔들리는 모습
싫은 것인지 좋은 것인지
웃음인지 울음인지
몰라도
꽃잎에 맺혀있는 빗방울
맑아서 순수하고 영롱해서 아름답다
꽃이 피는 것은
꽃이 지는 것보다 희망
사람들은 비를 맞고 있는
너를 보고
행복해서 웃고
아쉬워서 뒤돌아보고 있다
능소화 기억
김 익 택
주룩주룩
무심하게 내리는 장마 비
너에게 가혹할지 몰라도
내 눈에 비친 너 모습
생기 발랄한 소녀 해맑은 모습이다
그 옛날 소화
숨어 우는 모습이 저러했을까
비를 맞고도 웃고 있는 청초한 모습
가련해서 아름답다
지금 아니면
언제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싶어
집으로 돌아왔어도
순수한 너의 모습
쉽게 놓치고 싶지 않아
씨앗을 땅속에 묻듯
너의 기억 뇌리에 꼭꼭 심어본다
비는
김익 택
비는
양심적이다
조용하면 더 조용하게
시끄러우면 더 시끄럽게
꽃이 피는 화단
썩는 시궁창 마다 않고
싫은 곳 좋은 곳
가리지 않는다
비의 외침
김 익 택
들리느냐
듣고 있느냐
저 비가 외치는 소리를
도시의 검은 아스팔트 위에 차량 바퀴와
시멘트 건물에 부딪히는 소리
시골의 들녘과 높은 산과 깊은 계곡에 내리는
평화로운 소리를
때로는 특수 임무를 뛴 군사같이
그곳이 시궁창이던 화학 황산 저장 통이던 가리지 않고
돌진하고 있다
돌아 오지 않는 해병같이
땅 속 깊은 곳까지 침투해
기어코 살신성인이 되는
저 비가 묻고 있는 소리를
듣고 있느냐
알아 들었느냐
단비 너는
김 익 택
오를 때는 타는 목 마름으로
내릴 때는 젖은 울음으로 오는 너는
천상의 손님이다
네가 하늘로 올라가는 날
지상의 온 삶들은
대낮도 숨죽인 어둠이었고
네가 땅으로 내려오는 날
지상의 삶은
어두워도 환한 대낮이었다
네가 남기고 간 흔적은
어두워도 즐거운 생명이었고
네가 오지 않는 날에는
밝아도 어두운 생명들이었다
소나기
김 익 택
귀 따귀를 사정 없이 후려치듯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저 장대비 소리를
듣고 들어도 실정이 나지 않는 것은
뉘우침을 일깨워 주려는 신의 음성인가
온 몸 구석구석
굳음 몸 시원하게 풀어주는
저 물방울의 안마 솜씨는
신의 부드러운 손길인가
가려운 곳 긁어주고
더러운 곳 씻어주고
타는 목 풀어주는
저 생명의 물줄기는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성수인가
7월 장마
김 익 택
억울한 죽은 사람에게
흘리는 눈물
죽은 어머니가 살아서 돌아오는
감격의 눈물
그보다 격정적인
150MM 폭우 쏟아지고 있다
갈 때로 가 보자는 듯
산에도 들에도
도시에도 바다에도
산이 게워 내는 황토 물이
용의 비늘에서 미끄러지듯
계곡을 휩쓸고 들을 휩쓸고
아스팔트 휩쓸며
어깨동무하고
강으로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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