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 그 시절은


김 익 택

 

 

 

 

 

불과 반세기 전


요즘 아이들에겐 전설 같은 얘기입니다

일제 시대와 6.25전쟁 끝나고

1960년대

초가집에 호롱불 나무로 밥 짓던 시절

쟁기와 지게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지요

부잣집 아니면 라디오도 없던 그 시절

보리 고개에

굶어 죽는 사람 허다했지요

그 시절은 아이도 일꾼

학교 갔다 돌아오면 책 보자기 던져 두고

소 풀 베고 농사일 거들었지요

죽도록 일하는 것 밖에

일하지 않으면

행복이라는 단어는 사치였지요

가난할 수록 도타운 것은

우정은 형제보다 우선했고

의리는 죽어도 지켜야 하는 미덕으로 알았지요

세월 흘러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 시절보다 아름다운 추억 없고 우정 없습니다

향수는 옛 동무 없이는 존재 할 수 없습니다

그때 그 시절은 살기 어려웠던 만큼

추억은 절인 소금같이

안타깝고 그립고 아름답습니다

 










이제는 절대로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됩니더

 

 

김 익 택 

 

 

 

 


헤어진 지 63

나이 85

납북자 남편의 아내

통곡해도 눈물이 말라버린 할머니

남편 사진 앞에서 카네이션을 받친다

시집 온 지 채 1년도 안되었던 그날

죄도 없이 이유도 없이 

포승 줄에 두 손 꽁꽁 묶인 채

뒤 돌아보며

곧 돌아온다 걱정 마라

젊은 아내 걱정되어

집으로 들어가라 손짓하던

믿음직한 젊은 얼굴

그 눈 빛

아직 그대로 가슴에 남았는데

젊은 청년 남편 나이 구십

뱃속에 아이 환갑 넘어 예순 셋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63

녹슬지 않는 생각

녹슬지 않는 그리움

녹슬지 않는 희망

끊을 수 없는 것은

그립고 아플 수록 단단해지는 뱃속의 아들 때문

죽으려 해도

남편이 불쌍하고 내가 너무 원통해서 죽을 수 없었지요

말 하기도 어둔한 85세 할머니

한 서리고 애환 담긴 마지막 한마디

이제는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더

절대로···

절대로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됩니더












나 어릴 때 친구는


 

김 익 택



 

 

 

 

나 어린 시절 

못 먹고 못 살아도

친구를 위한 생각은

나보다 너

못 도와줘 미안하고

배려하지 못해 미안했지요

친구는 네가 아니라 나였기에

삶의 전부였지요

친구가 없으면

가슴에 흐르는 강은

물도 없고 고기 없는 썩은 물 다름 없지요

어려울수록 의리는 단단했고

가난 할 수록 정은 따뜻했지요

 


 








70년대 아이들은 그랬습니다


 

김 익 택 

 



 

 

 

숨어 있기 좋아 하는 아이는

부끄러움을 많이 탔습니다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부모님에게 말해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합니다

친구보다 더 잘하는 것 있어도

나서지 못하고

잘 할 수 있는데

더 잘 할 수 있는데

내 속에서 하는 말

꾹꾹 참으며

뒤에서 구경만 할 뿐

부끄러워 나서지 못합니다

누가 너 해 봐 하고

말 해줬으면

나보란 듯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간절한 바람만 있습니다 

좋아도 도망가고

도망가서 아쉬워하고 

자책하며 그리워하는

70년대 아이들은

대부분 다 그랬습니다















6~70 년대 봄은


 

김 익 택



 

 

 

 

나 어릴 적 벼를 심는 오월은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같이

자식 위한 부모님 마음같이

힘들어도 기뻤지요

 

오월에 내리는 비

엄마 젖 같이 달고

오월의 하루 볕은

일년 보약같이 자양분이었답니다

 

어두운 밤도 바빴던

깊은 오월은

부지깽이도 일어서고

죽은 조상님도 일을 돕는다 했지요

 

온종일 논을 가는 농부는

쟁기와 한 몸 되어

차가운 무논에서 쓰레질을 하고

눈 먼 할머니는 젖먹이 손주를 업고

부엌 일을 거들었지요

 

모를 심는 들녘마다

긴 호흡의 끝에 터져 나오는

한탄조의 풍년가 한가락은

무논에 넘쳐나는 물길같이 산천을 감돌았고요

 

소 모는 농부 쉰 목소리는

제 새끼 부르는 뻐꾸기 같이

논 배미에 산 그림자가 내릴 때까지 울려 퍼졌지요

 

 










그 시절은 그랬답니다

 


김 익 택




 

 

 

조국이 광복하고

6,25전쟁 끝났던 그때는

산도 마을도 집도 모두

불타거나 무너져버린 황폐한 땅 

봄이 오면 너도 나도

쑥 캐고 냉이 캐고

벌거벗은 온 산엔

나물 캐는 처녀와 아낙이 

수두룩 했답니다

배고픈 아이들은

물 오른 송진 빨아 먹고 

버들피리 불고 놀았지요

그 시절 아이들은

나무 실은 지에무시 사발트럭 경유 냄새가 좋아서

검은 연기 내뿜는 연소통에 코를 벌름거렸지요

자동차 기차를 한번 타 보는 것은 자랑거리

비행기는 가까이 한번 구경 하는 것 만으로 평생 소원이었고요

아이들의 놀이는 구슬치기 비석놀이 술래잡기였지요

밤에는 돗자리 갈린 초당 방 호롱불 아래 옹기종기 모여

유행가를 부르며 놀았고요

귀신 얘기로 귀를 쫑긋 세웠지요

서울 말씨는 멜랑꼬리 했지요

영화속에 서양 사람은 모두 똑같아 분간이 어려웠고요

신비했답니다 

낯선 사람 구경은 동네 국민학교 운동회가 유일했고요

물건 구경 사람 구경은 5일마다 쓰는 장날이었답니다

동네 하나밖에 없는 덕이 집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이미자 배호 노래는 돋고 들어도 아쉬운 음악이었고요

고구마 감자는 누구 집에나 있는 간식거리이었답니다

집집마다 아이들 공부는 뒷전

동생을 돌보고 풀 배고 나무하고 농사일을 거들었지요

물 오르는 봄

동네 밖 비단 같은 보리밭은

처녀 총각이 망쳐 놓았고요

처량하게 울어 대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죽을 만큼 싫은 총각들은

풀 배고 나무 하다 지게를 팽개치고

서울 부산으로 도망가기도 했고요

도시 총각 따라서 야반도주하는 처녀도 있었답니다

정조도 없고 신조도 없이

오는 봄은 

처녀 총각 맘을 확 뒤집어 놓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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