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호 새벽 물 안개
김 익 택
운해는 산을 포용하고
산은 운해를 덮고 있는
망막이 정신을 치유하는 저 풍경
현실이 꿈만 같아
누른 셔트를 다시 확인한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카메라 조리개 열고 닫고
렌즈를 밀고 당기며
좋은 위치에서 구도 찾느라
몸은 고되고 두뇌는 바쁘다
각본 없이 펼쳐지는
저 꿈속의 풍경
짧으면 1분 길면 30분
앵콜이 없다
11월 날씨
김 익 택
포근했다 냉랭했다
한번 비가 올 때마다
기온이 내려가는 11월은
얄미운 시누이 닮았다
단풍이 들었나 싶었더니
어느새 낙엽이 떨어지고
낙엽이 떨어졌나 싶었더니
하얀 서리가 내리고
하얀 서리가 내렸나 싶으면
살얼음이 어는
그 옛날 시어미를 닮았다
가을은 목 마름이 되어
김 익 택
사람아
가을 들녘을 걷거들랑 서두르지 마라
가을은 모두가 외로운 처지
가을은 아가의 보드라운 손으로도 부서지는 것들 뿐이다
목 타는 나뭇잎은 웃음소리에도 부서지고
한 줌 따뜻한 햇살에도 부서지는 속살이다
사람아
가을 들녘을 걷거들랑 풀잎 하나 함부로 밟지 마라
노을에 물든 초원이 붉은 것은
마름이 아파서 멍든 자국이고
호호백발 갈 대가 갈퀴를 흔드는 것은
늙기 싫고 떠나기 싫은 두려움이다
사람아
가을의 들녘을 걷거들랑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마라
엄마의 품처럼 노을이 제 아무리 아늑하게 품었다 한들
아픈 마음까지 품은 것이 아니다
드센 바람 불면 모두가 드러나는 법
들리는 소리소리 모두 아쉽고 서러운 울음이다
겨울 가는 나무
김 익 택
아쉬운 여운만 남겨 둔 채
국화꽃 향기는
저문 가을 추위 속으로
미련도 없이 떠나가고
아직 마음을 돌려 세우지 못한 가을은
새벽마다 몸살을 앓고 있다
올 때는
온갖 인상 찌푸리다
볼일 다 본 뒤 뒤돌아보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나는 화장실 풍경처럼
계절은 언제나 제 갈 길을 가는 나그네
단 한번도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매일 매만지는
머리카락 언제 자라는지 모르듯
시간은 속이 텅 비워도 흘러가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라도 흘러가는 것인데
우리가 우리를 채우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이
발가숭이 겨울 산은
푸른 꿈을 꾸는 산통이다
스스로 몸을 낮추고 야위어야 사는
진리를 깨달은 저 산의 나무들
스스로 맹 추위 속으로 가고 있음을
수양버드나무를 보고 있으면
김 익 택
당신 보면 늘
생각나는 것이 있다
봄에는 아기 손같이
여름 시냇가 머리 감는
처녀의 긴 생머리가 생각난다
바람 소리에도 흔들리는
가을 어느 날
지조 없는 너의 모습은
때로는 동정이 없지 않지만 외로움은 싫다
바람이 살을 발라 먹는
겨울
부드러워야 살 수 있는
너의 야윈 뼈는
삶의 진면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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