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림사

김 익 택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깔끔한 사찰 내부풍경이

아담스럽다 못해 소담스럽다

낭랑한 목탁소리

계곡의 물길따라 삶들에게 스며들고

은은한 범종 소리는 길따라

마을로 흘러가 인간 본성 일 깨우고

우거진 숲속으로 퍼져갔던 진리의 바람

법고 소리는 전설 속 이야긴가

 

松林寺는

그 흔한 소나무는 한거루 보이지 않고

현대식 붉은 벽돌로 갈아 입은

오층전탑이 반기고 있다

진흥왕5년 명관대사님 창간이후

몽고침입때 화재로 소실한뒤

몇번 더 중창해서 일까

고풍스런 모습은 어디 한곳 찾아 볼 수 없다

 

아쉽고 허전한 것은 나그네만 그럴까

눈에 들어오는 대웅전과 오층전탑

그리고 나무들과 전원풍경은

그 어디 한 곳

옛 모습 느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송림사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544년(진흥왕 5)에 진나라에서 귀국한 명관(明觀)이 중국에서 가져온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기 위해서 창건한 절이다.

그 때 이 절에 호국안민(護國安民)을 위한 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 뒤 1092년(선종 9)에 대각국사의천(義天)이 중창하였고, 1235년(고종 22)에 몽고병에 의하여 폐허화하였으며, 그 뒤 다시 중창하였으나 1597년(선조 30)에 왜병들의 방화로 소실되었다.1858년(철종 9) 영추(永樞)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하여 명부전(冥府殿)·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전방에는 보물 제189호로 지정된 송림사오층전탑(松林寺五層塼塔)이 있다. 이 탑은 흔치 않은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벽돌 탑으로서, 1959년 탑의 해체·수리 때에 매우 중요한 유품들이 출현되었다.

당시 탑 속에서는 신라시대의 유품으로 보이는 순금제 불감(佛龕)을 비롯하여 옥으로 줄기를 만들고 금으로 잎을 만들어 붙인 보리수(菩提樹) 형태의 섬세한 공예품, 그리고 각종 구슬류와 함께 불사리 4과(顆)가 발견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절에 소장되어 있는 경판으로는 『충장공유사(忠壯公遺事)』와 그 부록이 있다.

 

 

오층전탑 사리장엄구

토축의 얕은 단층 기단 위에 세워진 전탑으로 신라시대의 탑 가운데 유일하게 금동상륜부가 남아 있다. 기단의 각 면석에는 우주와 5개의 탱주를 모각하고, 그 위로 갑석을 덮은 후 중앙에 1단의 화강암으로 탑신받침을 마련했는데 이것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의 수법과 같다.

탑신부는 한 변의 길이 27㎝, 높이 6.2㎝인 방형전과 이를 반으로 자른 장방형전 2가지로 축조되었는데, 곳곳에 문양전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여러 차례 보수한 것으로 짐작된다. 1층 옥신이 가장 높으며 2층 이상의 옥신과 옥개석은 높이와 체감률이 완만하여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옥개부에는 전탑의 일반적인 방식대로 상하에 층단을 두었는데 받침수는 1층부터 9·7·7·6·4단이고, 낙수면의 층단수는 11·9·8·7·5단이다. 낙수면의 층단수가 많아 각 층의 옥개부는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상륜부는 벽돌로 쌓은 노반 위 모퉁이에 풍령을 단 동판으로 된 갑석이 있고, 그 위 목제 찰주·복발·앙화·보륜·용차·보주가 차례로 얹혀 있다. 보륜의 일부와 수연이 없어진 듯한 공간이 있으나 현존하는 유일한 신라시대의 금동상륜부로 그 가치가 높다. 현재의 상륜부는 1959년 해체·보수 공사 때 원형대로 모조한 것이며, 이때 1층 옥신과 2·3층 옥개부에서 제작시기가 다른 사리장치를 비롯한 많은 유물이 나왔다. 이로 인해 여러 차례의 해체·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1층 옥신 남면에 감실이 개설되었던 것을 후세에 벽돌로 막은 사실도 밝혀졌다.

 

사리기

1층 옥신에서는 조선시대의 목불과 파손된 석불, 동불이 나왔고, 2층 옥개부에서는 채색된 거북 모양의 석궤 안에 넣은 높이 14.2㎝ 크기의 금동전각형사리기가 발견되었다. 이 사리기는 네 기둥의 아랫부분에 난간을 두르고 중앙에 앙련좌를 두어 유리잔을 받치게 하고, 기둥 위로는 보개를 얹어 전각과 흡사한 모양이다. 가운데에는 높이 7.0㎝, 입지름 8.7㎝의 녹색 유리잔을 안치하고, 그 안에 다시 높이 6.3㎝, 입지름 3.1㎝의 녹색유리제 사리병을 얹어놓았다.

녹색의 유리제품은 사리장엄구로서는 유일한 것으로 잔의 표면에는 12개의 둥근 고리 모양의 장식이 있고, 사리병은 보주형 마개로 막았다. 보개에는 은도금한 수형 장식구를 달았으며 200여 개의 영락으로 장엄했다. 금동전각의 노란색과 유리제품의 녹색은 서로 대비되어 호사스럽고 강한 인상을 준다.

사리기 옆에는 높이가 18.0㎝에 달하는 금동제수형장식구가 세워져 있다. 3층 옥개부에서는 뚜껑이 없는 석궤 안에서 목개와 부식된 종이 조각이 나왔다. 5층 옥개석 위의 복발에서 높이 7.8㎝, 입지름 18.0㎝의 청자상감원형합과 지름 3.0㎝, 두께 7.5㎝의 금동원륜 2개가 나왔다. 이 원형합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전탑의 윗부분이 고려시대에 수리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외에도 구슬 281개, 은환 15개, 향목) 7편, 열매 1개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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