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부드러워도
김 익 택
봄은 부드러워도
그 안에 삶은 바쁘다
가는 추위가 바쁘면
오는 푸름이 바쁘다
바빠서 활기차고
바빠서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
봄의 삶인가
알을 낳아야 하는 개구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짝을 찾아야 하고
겨울잠을 잤던 뱀은
빨리 허기를 채워 알을 낳고 새끼를 낳는다
태어나 산다는 것은
생존의 책임이고 삶의 의무다
논두렁에 엉겅퀴 붉은 꽃을 빨리 피워야
더 많은 벌을 만나고 나비를 만날 수 있음을 안다
삶은 그곳이 어디든 전쟁터
살아 남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무논을 빌려 사는 생물들은
농부가 무논을 다시 갈아 업기 전까지
구애도 빨리 해야 하고
사랑도 빨리 해야 한다
5월의 비는
김 익 택
5월의 비는
농부들 가슴에
울음 같은 비
들판마다 촉촉하게
물을 머금으면
아파 죽어도 씨앗들고
논밭을 나선다
5월의 비는
농부들 가슴에
희망 심는다
빈 논마다
늠실대는 물을 보면
굶어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숲 속에서
김 익 택
욕심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처연한 눈
그 아래 아무 미련 없이 흘러가는 물
바람이 침묵하는 사이
정신을 일깨우는 호루라기 새 울음소리
울음이 저리도 맑을 수 있을까 싶어
소리 나는 쪽으로 바라본다
휘파람새도 울 때는 숨어서 우는 것일까
나무잎 하나 움직이지 않고 새소리만 들린다
여기서도 나는 이방인가
낯선 사회에 느끼는 이질감을
아무도 없는 숲 속 새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있는 듯 없는 듯
아무도 모르게 조용하게 있었건만
세속의 묻은 냄새가 그렇게도 지독했던가
벚꽃망울
김 익 택
눈이 없어 볼 수 없고
입 없어 말 할 수 없는
그가
검은 가지 끝마다
터뜨린 하얀 꽃망울
눈이 있어
보고 있는 사람들
겨울 네 우울했던 가슴
치유하는 일
의사가
너 만큼이나 할까
화사한 빛과
은은하게 퍼뜨리는
향기로
사람들 입가에 번지는
미소가 꽃이고 가슴이 봄이다
어느 날 나는
김 익 택
어느 날 나는
내가 싫고 삶이 싫어질 때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서
꼭꼭 숨고 싶을 때가 있다
어느 날 나는
환장하고 미치도록 보고 싶고
그리움이 사모칠 때
석양의 노을 속으로
비가 오면 비속으로
빛으로 용해되고
물로 용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하여 나는
내 속에 남아 있는
온갖 사념 다 버리고
빈 가죽만 남아서
속이 텅 빈 북이 되고 싶다
아이가 때려도 같은 소리
어른이 때려도 같은 소리
듣는 사람
심장을 울려주는 고동이 되고 싶다
숲의 초대장
김 익 택
나는 아직까지
그 누구도
내 가슴 밭에 초대 한 적이 없다
그 동안 나는 관심 밖의 삶
버려진 내 삶을 치유하고
성장하기도 바빴다
하루 같은 일년의 버거운 시간이 지나고
본래 나의 모습을 찾았을 즈음
곤충들은 하나 둘
나의 가슴 밭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누구에게도 거역 할 수 없는 삶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이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뿐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푸르름은 더해 가고
내가 성장한 만큼
늘어나는 향기와 맑은 물은
또 다른 삶의 매개체
곤충들이 늘어나자
새들이 찿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어 난 생물들은
대게는 공생공존의 법칙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드러난 내 뿌리를 더 밟고 지나가고
약초와 희귀식물은 파갔다
그러다 숲이 그리운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파괴 된 나의 삶의 부재가
삶에 필연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그들은 자생하는 풀처럼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숲이 그리운 사람들은
온화하고 쾌활했고 작은 것에 감동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아낌없이 주는 숲이 되었다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부푼 유두를 푹푹 짜서 주었고
푸른 입술에서 나온 은빛 꿀을 마구 내어 주었다
사람도 동물도 곤충도
다 같은 생물
그들이 외롭다고 하면 나도 외로운 존재
그 외로움을 나의 오지랖에서
편안한 휴식을 얻고 안정을 얻는다면
나의 가슴밭은
그들에게 언제나 열려있는 레드 카펫이다
벚꽃 아래에서
김 익 택
도란도란 얘기꽃 피우며
지나가는 모녀
숙녀소리 햇살처럼 맑고
엄마소리 벚꽃처럼 화사하다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천국이면
보고 느끼는 나는 무얼까
벚꽃 피는 봄날 하루
그들에게 방해 될까
먼산 보고 있는데
스믈살에 시집와서
스물 하나 나를 낳고
내 나이 이십에도
꽃같이 젊었던 우리 엄마
아버지 땜에 고생하고
자식 땜에 속상하고
50년 넘는 동안
제대로 벚꽃 한번 못하고
꼬부라진 허리에
온통 주름뿐인 우리엄마
문득 생각나서
가슴 울컥하고 코끝이 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