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저녁노을
김 익 택
노인이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움푹 패인 시선 끝
풍경이 찬란하다
마지막까지 불사르는 노을에
노인은 눈을 떼지 못한다
사랑도 젊음도 노을도
짧은 아름다움
노인은 다리를 오므리고
태양이 서산에 기울 때까지
시선 고정이다
붉은 노을에 비친 노인의 얼굴에
동심이 묻혀 있다
세월이 주연도 아니고 조연도 아닌
시간의 관람자로 바뀌어 놓았다
바람 속에 노을이 있었던가
노을 속에 바람이 있었던가
지는 해는 말을 하지 않고
어둠은 조용히 노을을 삼킨다
노인은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꿈에
김 익 택
당신은 초대 받지 손님
당신은 언제나 무례하고 당당합니다
어느 밤에는 뱀파이어가 되었다가
어느 밤에는 정의의 사자가 되었다가
백악기에 살다가 공상과학에서
외롭게 서 있는 나는
어느 밤에는 피카소 그림 속에 살기도 하고
어느 밤에는 혜원 그림 속에서
사랑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보듬을 수도 없고 떨쳐버릴 수도 없고
좋아할 수도 없고 싫어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 번 죽지만 번번히 기적 같이 살아 납니다
죄인이 되기도 하고 영웅이 되기도 합니다
행복 불행도 찰나
권리없고 의무 없지만 맘에 두면 무겁습니다
어릴 때는 수시로 절벽으로 내몰았고
도둑으로 내몰기도 했습니다
묻은 때가 많을수록 부귀 영화보다
마귀가 설쳐 되는 어수선한 밤이 되었습니다
하나이면서 둘이 되는 나는
수면의 장애보다 무서운 당신을
떨쳐 버릴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내 의지와 관계 없지만
나에게 일으나는 현상입니다
한편의 영화를 보듯 내 삶의 밖의 일이기도 합니다
매일 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암시하는 지
알 수 없는 무수한 말과 신호를 해독 못한
이야기들이 겹겹히 쌓여갔지만
하루만 지나면 잊어버리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밤마다 계속되는 불안은 동거는
무시 할 수도 없어 불안합니다
나를 아는 그대
나를 암시하는 그대
이제 제발 숨바꼭질 그만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한 기도까지 했지만 무의미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