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필 때
김 익 택
시집간 딸 걱정하는
어머니를 닮았을까
친정엄마 늘 보고픈
딸의 마음 닮았을까
물동이 이고 가는
아주머니를 바라보듯
빨래 감 이고 가는
아가씨를 바라보듯
유월의 땡볕 더위
아랑곳하지 않고
담장 너머로 내민
붉은 얼굴 수줍다
바람은
김 익 택
지난 밤
꽃잎이 폈는지 떨어졌는지
바람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소중한 날 그리운 날에도
누가 알고 웃고 울고 그리워했는지
누가 노래를 불렀는지
바람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어도
좋은 일 더러운 일
있고 없는 일
바람은
오래 전부터 타인이었습니다
내일도 모래도 먼 훗날에도
내가 바라고 네가 바라고
우리가 바라는 바람 아닙니다
있어야 보이는 그림자같이
뒤통수 눈
김 익 택
세상에서 제일 부끄러움을 아는 눈은 얼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통수에 있다
뒤통수는
보이지 않아도 똑똑하게 느낄 수 있는 메시지의 창고이다
뒤통수는 뜻하지 않는 수모를 당했을 때 자정을 잃고 만다
그때 뒤통수는
순수하고 정직해서 받은 상처가 독이 되는 과정이고
그때 뒤통수는
머리카락이 있고 단단한 뼈가 둘러싸여 있는 단순한 뇌의
보호막이 아니라
강력한 뇌관이 잠재해 있는 폭발 창고가 되는 과정이다
그때 뒤통수는
꼭 갚겠다는 치욕의 심장이 되는 팔딱 뛰는 과정이기 하다
그 이유
나를 억누르고 돌아서서 혼자 자책하는 일 보다
돌려세운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뒤통수가 어떻게 비쳤을까 라는
강의 의심이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뒤통수는 하지 말아야 할 부탁을 거절당했을 때
씁쓸한 기분은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어도
자존심을 뭉개는 듣지 말아야 할을 말을 들었을 때
일어나는 양심의 변화이다
그때 뒤통수는 멸시 천대 수치 치욕
이세상 온갖 동정을 다 끌어 부어도 시원치 않을
타는 눈이 되는 것이고
끊는 목소리가 되는 것이고
뜯는 싶은 귀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뒤통수는
강한 충격을 받으면 치욕을 느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내가 남의 뒤통수를 보고 말하는 것은 쉬워도
내가 남에게 당한 수모는 절대 잊지 못하면
순수 해야 할 눈은 惡의 눈이 되는 것이고
침묵해야 할 입은 恨의 입이 되는 것이고
소통해야 할 귀가 怨의 귀가 되는 것이다
당장 지금은
설움을 아픔을 치욕을 눈물을 삭이느라
벙어리가 될지 몰라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옳고 그름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 지나면 뒤통수는 그것까지 후회할 줄 안다
생의 의미
김 익 택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삭정이가 고목에게 물었다
봄은 어디서 오는 거지요
북쪽바람이 남쪽바람에게
밀려가면 그때가 봄입니다
그 봄 언제쯤 오지요
바람이 생명들 목덜미를 옥 죄며 오지요
그 봄이 온 뒤는 요
꽃 피고 잎 피고 나면 세상은 온통 초록이지요
그때부터 사랑하고 새끼 낳고
숲 속은 새끼를 키운다고 시끄럽지요
숲 속이 시끄러워야 나무가 자라고 숲이 우거집니다
그것 뿐인가요
공기 중에 3할
산소는 생물을 숨 쉬게 하고
우리 몸 7할
물은 만물을 생성하게 하지요
그리고
우리들의 삶 10할은
꾹꾹 참아야 의미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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