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나무의 소원



김 익 택




 

 

 

 

손길을 기다리던 닥나무

알몸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간다

물먹은 닥나무

어머니의 양수 같은 뿌연 물에 제 몸을 스스로 무장해제 한다

그 시각은 삶의 고뇌가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종이 고향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태어날 때 목적은 원대했다

끓이고 다리고 다지고 헹구고 섞고 말리기를

거듭 반복해야 탄생하는 삶

지식의 전달자가 되어

원하는 사람 모두에게

집게 손 지문이 닳아 피가 맺히고 

책장 귀가 떨어져 나가도록 닳고

입술의 피가 낟장마다 묻히는 영광 누려보려 했다

그래서

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기록이고 싶었다

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그림이고 싶었다

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음악이고 싶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 나

양심이 진실을 향해 고개를 고추 세우는 것

살아온 과거가 허물이 있을 때

지키지 못한 내부 양심의 소리 자괴감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 자괴감을 살아가면서 갚아야겠다는 다짐 

그 다짐에 면죄부를 슬며시 올려 놓는 것이다

잠에서 벌떡 일어나게 하는 한 권의 책

삶의 길잡이 역사 철학 종교 과학

삶이 죽어도 죽지 않는 진리

꿈속에서 경고를 하고

죽어서도 살아 있는 책

읽는 사람 모두

하늘의 뜻 깨달을 수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처음 만났던

그 눈 맞춤 잊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짝사랑 같은 것 바라지도 않으나

일 년 내내 달도 볕도 들어오지 않는

음침한 구석에서 곰팡이에 다리가 썩고

먼지에 머리가 썩어가는 삶

항변이 없다 하여 양심을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숲 길



김 익 택



 

 

소나무과의 나무는 다리가 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유행 따라 새 옷 갈아입지 못하지만

질투 많은 봄바람은

속살 감추는 레깅스와 미니 스커트를 슬쩍 건드리며 지나가고

오해가 많은 여름 비는 짙은 녹색 블라우스와 스카프 흠뻑 적시고

냉정한 겨울 햇살은 하얀 밍크 코트 녹이지 못해 애타고 있다


아침 숲 길의 초대장은 언제나 신선하다

햇빛 드는 금빛 사이 사이로

환히 길 터 주면 바람이 먼저 가고 

그 뒤로 구름 그림자가 밟고 가는 그 길은

삶을 치유하는 생명들의 공간이다


계절은 숲에서 왔다가

숲 길을 따라 삶들은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길을 밟고 가는 바람 소리는

비발디의 사계가 있고

바람이 그려 놓은 풍경속에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있다


삼나무 전나무 잣나무 소나무 쭉쭉 뻗은 다리는

밀라노 파리 뉴욕의 루이스뷔퉁 버버리 디오르 샤넬 베르사채·····

패션 모델보다 시원하다


부채 햇살 내리는 숲 속 길을

사람이 걸어가면 시인이 되고

바람이 걸어가면 소설이 되고

햇빛이 걸어가면 보석이 된다

 







공상이 아름다울 때

 


김 익 택





 

 

집 없는 사람 담벽에 기대어 하늘을 보고 있습니다

 

저기 천국이 있을까요

밤길 걷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곳이 지옥이던 천국이던 끝까지 가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양심이 자책 할 때

왜 그랬을까

후회는 혼자 있을 때 더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같은 상상이 아름다울 때가 있었습니다

 

너그러운 돈이 있다면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 죽는 사람 없었을 텐데

잠깐의 사색의 풍요로움은

퍼 줌으로써 성자 위 그곳까지 품고도 남음이 있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공상은 언제나 행복한 바보가 됩니다


그 속에 꿈의 부피는 한정 없이 크고 

그 속에 꿈의 무게는 크면서도 가볍고

그 속에 꿈의 깊이는 가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현실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울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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